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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네 일상/데일리 스토리

단 하루도 너를 잊을 수가 없다.

별뜨락 2020. 4. 10. 23:10

예전 중학교 교사를 하던 시절. 그때 만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단 하루도 너를 잊을 수가 없다.


교사가 된 지 두 번째 해에 그 아이를 알게 되었다. 그 아이는 많은 아이들이 운동장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있어도, 대번에 눈에 띄었다. 중학생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들 정도로 체격이 왜소해서, 그 아이가 입은 커다란 교복이 거추장스러워 보였으니까.

그 아이는, 등교할 때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걷는 게 쉽지가 않았다. 어렵사리 계단을 올라 교실문 앞에 서면 아이의 부모는 기도하듯 낮은 소리와 함께 무거운 책가방을 아이에게 건넸다. 부모님과 헤어지고 교실문으로 들어가던 아이를 볼 때면 아이의 단발머리가 유난히 찰랑찰랑 흔들거렸다. 아마도 다리에 중심이 잘 잡히지 않다보니, 움직일 때마다 몸이 흔들려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틈만 나면 교과 선생님들을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00이는요, 어렸을 때 척수염에 걸렸어요. 지금은 등을 지탱시켜주는 장치를 착용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등에 통증이 느껴진대요. 그러니까 우리 00이 좀 잘 지켜봐 주세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몸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데도 항상 환하고 밝은 표정으로 학교에서 지낼 수가 있을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00이는 명석함과 책임감이 단연 돋보이는 아이였다. 수행평가면 수행평가, 지필평가면 지필평가 할 것 없이 최고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던 00이였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남달라서 수업 시간이면 교실에서 가장 빛나는 눈빛을 가진 아이였다.

나는 다른 교사들보다도 00이와 마주치는 시간이 많았다.

“00, 오늘은 2교시 국어와 5교시 영어 시간이 바뀌니까, 아이들에게 알려줘.”

! 선생님!”

수업계를 맡아 수업 시간을 조정하는 업무를 보았던 나는, 반장이었던 00이를 자주 찾았다. 그 아이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선생님! 위를 보세요!”

나는 고개를 들어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이 시원했다. 잠시 후 내 시야에 00이가 들어왔다.

선생님! 저 00이에요!”

, 00!”

나는 00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알고 보니 00이와 나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그 뒤로 가끔 00이는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반겨주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버릴 정도로 고단한 날에도 00이의 쾌활한 목소리를 한 번 들으면, 다시 힘이 솟았다.

신기했다. 00이는 장애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만이 아니라, 그 아이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친구들에게도 도움을 받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때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작고 몸이 불편했던 00이. 그 아이가 자신이 직면한 세계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를.

몸이 불편한 00이를 볼 때마다 애잔했고....성실하고 밝은 00이가 대견스럽고 예뻤지만……. 그 애가 경험했던 삶이, 혹한과 같은 가혹한 현실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걸 그 애가 힘겹게 헤쳐 나가고 있었다는 걸, 절대 알지 못했다. 6년 전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6년 전 초겨울, 동생한테 연락이 왔다. 동생은 아이 때문에 병원에 와 있다면서 울먹였다. 여섯 살 조카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언니, 00이가 척수염에 걸렸대. 바이러스성 희귀병이래. 병원에서는 상황이 심각해서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고…….”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던 조카였는데……. 청천벽력 같은 조카의 소식에 나는 심상이 오그라드는 것처럼 가슴이 조여 왔다. 그 뒤로 조카는 병원 무균실에서 면역 글로불린을 비롯한 각종 주사제를 맞아가며 하루하루를 버티어 나갔다. 그 사이 동생 내외가 피눈물을 억지로 꾸역꾸역 삼켜는 걸 지켜봤다. 한 번은 북받쳐 흐르던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병실 앞에서 제부가 마구 울부짖은 적도 있었다.

몇 개월이 지났고, 다행스럽게 조카는 생명을 건질 수는 있었지만, 그 뒤로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했다

, 장애인의 삶이라는 게 이렇게 가혹한 것이구나. 한창 뛰어놀 나이의 조카아이는, 걸음 보조 장치나 휠체어가 없으면 움직이지도 못했다. 아주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동생은 여기저기에 있는 재활병원을 찾아, 조카아이의 재활 치료에 전념했지만, 조카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카에게 생긴 몸의 상처는 마음의 상처로까지 이어졌다. 특히 조카가 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그 아이와 가족이 감당해내야 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너무 컸다. 나는 조카를 지켜보면서 비로소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의 삶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깨달았다.

언니, 내년에는 00이가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잖아. 00이처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하려면 학교와 교육청에다가 미리 신청하고 부탁해야 할 게 많아.”

장애를 가진 아이는 보통 아이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것조차도, 힘들게 노력해서 겨우 얻어낸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조카를 보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00이가 문득 떠올랐다.

00이와 조카아이가 앓았던 병이 우연히 같아서였을까? 그것보다는, 그 시절 밝고 명석했던 그 아이의 겉모습만을 보면서, 그 아이의 내면에 놓여있던 고통을 제대로 알아봐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나는 요즘도 수많은 00이를 본다. 관공서에서, 마트에서, 길거리에서 내가 만나는 장애인들이 모두 00이다.  며칠 전 만났던 동사무소 직원도 나에게는 00이었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냥한 표정으로 주민들을 상대하는 동사무소 직원.. 봉사자의 안내를 받으며 마트에서 장을 보는 장애인. 그도 나에겐 00이다. 휠체어를 밀며 길을 걷다 마주친 장애인. 그녀 역시도 나에겐 00이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단 하루도 00이를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수많은 00이를 볼 때마다 그들이 삶을 일궈나가는 노력에 고개를 숙이고,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힘껏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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