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 태국 치앙마이
- 태국 방콕
- 홍콩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 미세먼지
- 베트남 다낭
- 동화
- 태국
- 대만 타이베이
- 몸신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 3.1운동
- 주기율표
- 3.1운동 100주년
- 10월 프랑스 옷차림
- 태국 푸켓
- 베트남 여행
- 천기누설
- 정지용
- 홍콩 여행
- 나는 몸신이다
- 천연인슐린
- 베트남 하노이
- 싱가포르 날씨
- 원소주기율표
- 크리스마스 선물 추천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 10월 프랑스 날씨
- 오곡밥
이카네 집
수신사 파견, 위정척사 운동, 임오군란 본문
개화 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어나다
개화 정책의 추진
(1) 일본에 수신사 파견
일본 | •수신사 : 근대화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 조사⟶1차 수신사 김기수 일행 ;근대 시설 사찰(1876) ⟶ 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1880, ‘조선책략’ 소개); 일본과의 조약 개정 위한 목적 이루지 못했지만 일본의 발전상 살펴봄 |
•수신사 시찰 의견 바탕으로 다음을 설치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0) |
-개화 정책 총괄. -의정부와 별도의 기구로 조직. -외교·무역·군사 등 부국강병과 관련된 개화 정책 주관 |
군사제도 | -5군영을 2영 (무위영, 장어영)으로 통합 -별기군 창설 : -일본인 교관의 훈련을 받는 신식 군대 -당시 공식 명칭은 ‘교련병대’ |
(2) 수신사 외 나머지 사절단
일본 | •조사 시찰단(1881) :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등 비밀리에 파견⟶일본의 제도·법률, 공장 등 조사 |
청 | 영선사(1881): 김윤식 영선사로 임명해 중인 자제들 이끌고, 청의 무기·화약·기계 제조법 배우게 함 ⟶기기창(한성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무기 제조 공장) 설치에 영향 ⇒정부 재정 부족과 임오군란으로 일찍 돌아옴 |
미국 | 답례 사절단(1883): 민영익 등, 미국과의 수교 이후 파견 ⟶근대 시설 살펴봄 |
<역사 다가가기> 최초의 미국 사절단 구성은 어떠하였을까? | |
1883년 조선은 미국에 전권대신 민영익을 중심으로 한 답례 사절단 파견. 사절단 구성할 당시 통역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하자 청의 역관인 오례당을 영어, 중국어의 통역으로 뽑았고, 청의 중서학당에서 유학하여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하였던 고영철도 사절단에 포함하였다. 또한 미국 공사관 제안으로 미국인 퍼시벌 로웰과 일본인 영어 통역가인 미야오카 쓰네지로가 사잘단에 합류하였다. 11명의 인원이었던 사절단은 이처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
2. 위정척사 운동
(1) 의미 :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고, 성리학 이외의 종교와 사상을 배격하자는 양반 유생의 주장
(2) 전개 : ① 1860년대 통상 반대(이항로, 기정진 등 척화 주전론-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지지)
② 1870년대(강화도 조약 체결 무렵) 최익현 등 왜양일체론 –개항 반대(강화도 조약 반대)
③1880년대(개화 정책 실시 및 조선책략 퍼질 때) 개화 정책 및 미국과 수교 반대(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은 만인소 올림)
(3) 의의와 한계
① 의의 : 반외세·반침략 민족 운동 ⟶항일 의병 운동으로 이어짐
②한계 : 양반 중심의 성리학적 질서 유지하려 했다.
통상 반대 운동 (척화주전론) |
| 개항 반대 운동 (왜양일체론) |
| 개화 반대 운동 (미국과 수교 반대) |
| 항일 의병 운동 |
오늘날 서양 오랑캐의 침입을 당하여 국론이 화친과 전쟁으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서양인을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은 내 나라 쪽 사람의 주장이고, 서양인과 화친해야 한다는 주장은 적국 쪽 사람의 주장이다. 전자를 따르면 나라와 문화의 전통을 보전할 수 있지만 후자를 따른다면 인류(조선인)가 금수의 지경으로 빠지고 말 것이다. -이항로, 화서집 |
일단 강화를 맺고 나면 저들의 욕심은 물화를 교역하는 데 있습니다... 저들이 비록 왜인이라고 하나 실은 서양의 적이옵니다. 강화가 한번 이루어지면 사학의 서적과 천주의 초상화가 교역하는 속에서 들어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 안 가서 선교사와 신자 간의 전수를 거쳐 사학이 온 나라 안에 퍼질 것입니다. -최익현, 면암집 | 미국을 끌어들일 경우 그들이 재물을 요구하고 우리의 약점을 알아차려 어려운 청을 하거나 과도한 경우를 떠맡긴다면 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러시아는 우리와 혐의가 없는 바, 공연히 남의 말만 들어 틈이 생기게 된다면 우리의 위신이 손상될 뿐만 아니라 만약 이를 구실로 침략해 온다면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일성록, 영남 만인소 |
||||
<주장이 제기된 배경> 1860년대 서구 열강의 통상 요구 |
<주장이 제기된 배경> 1870년대 강화도 조약 체결 |
<주장이 제기된 배경> 1880년대 미국과의 수교,(조선책략 유포) |
||||
<양반 유생들이 이와 같이 주장한 이유> →서양의 사상·문물 등이 조선에 들어오면 성리학적 사회질서 무너진다고 인식 + 열강과 교육을 하게 되면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고 봄 |
3. 임오군란(1882)
(1) 배경 :-개화 정책으로 정부의 재정 지출 증가(백성의 세금 부담 증가)
-일본의 경제 침탈(일본으로 곡물 수출되어 쌀값 크게 오름)로 하층민의 생활 악화
-구식 군대 군인에 대한 차별(신식 군대에 비해 낮은 대우)
⇒13개월 만의 급료 쌀에 겨와 모래 섞여 있자, 구식 군대 군인들 분노
(2) 전개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흥선 대원군에게 도움 요청하고 정부 고관 집 공격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 살해, 일본 공사관 공격
⟶도시 하층민 가담 ⟶창덕궁 쳐들어갔으나, 왕비는 이미 피신
⟶(고종이 흥선 대원군에게 군란 수습 맡기면서) 흥선 대원군의 권력 장악, 개화 정책 중단
⟶청의 군대 파견(민씨 세력의 요청)⟶군란 진압, 흥선 대원군을 청으로 압송
(3) 결과
① 청의 내정 간섭 심화 :
경제적 침투 강화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두 나라 상인들 수륙 양면에 관한 규정) 체결, 양화진·한성 개방 |
내정과 외교 간섭 | 조선에 청군 주둔, 고문을 파견(마건상, 묄렌도르프) |
② 일본과 제물포 조약 체결 : (임오군란 당시 일본 공사관 습격 구실)
일본에 배상금 지불, 일본군의 한성 주둔 허용
<제물포 조약 (1882)> 제1조 금일부터 20일 안에 조선국은 흉도를 체포하고 그 괴수를 엄중히 취조하여 처단한다. 일본국은 관리를 보내 입회 처단케 한다. 만일 그 기일 안에 체포하지 못할 때는 응당 일본국이 처리한다. 제5조 일본 공사관에 군인 약간을 두어 경비한다. 그 비용은 조선국이 부담한다. |
<역사 다가가기> 도시 하층민은 왜 임오군란에 가담했을까? | |
19세기경 한성 4대문 밖에 위치한 왕십리, 이태원 등 지역에는 구식 군대의 군인과 그 가족들을 비롯하여 상당수의 하층민이 거주. 당시 구식 군대 군인들은 정부 재정 부족으로 급료를 제대로 받지 못함. 이들은 도성 근처에서 채소 키워 내다 팔며 생계를 이었다. 그러던 중 개항에 따른 쌀 수출로 국내 쌀값이 폭등하자 날품팔이로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 증가했다. 개항, 개화 정책으로 경제적 피해 입었다고 생각한 도시 하층민들은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이에 적극 가담함. 이로 인해 군란 세력 더욱 커졌다. |
'이카네 공부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부 농민 봉기, 제1차 봉기, 제2차 봉기 (요약 정리) (0) | 2022.04.29 |
---|---|
[한국사]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열강의 대립이 커지다 (0) | 2022.04.28 |
운요효 사건과 강화도 조약 + 조미 수호 통상 조약(요약 정리) (0) | 2022.04.26 |
중국의 양무운동, 일본의 메이지 유신, 조선에서의 개국 통상론 (0) | 2022.04.25 |
[한국사] 천주교 박해와 병인양요, 제너럴셔먼호와 신미양요 (0) | 2022.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