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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열강의 대립이 커지다

별뜨락 2022. 4. 28. 10:12

1. 개화파의 분화

(1) 배경 : 임오군란 이후 개화 추진 방법과 외교 방향에서 입장 차이 발생

(2) 분화

구분 온건 개화파 급진 개화파
인물 김윤식, 김홍집, 어윤중 등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모델 청의 양무운동 일본의 메이지 유신
사상 동도서기론
전통적 제도, 사상(동도), 유교 지키면서 서구 근대 기술 수용
문명개화론
서양 기술뿐 아니라 사상,제도까지 받아들임

청과 우호 관계 유지 청의 내정 간섭 벗어나야 함

(3) 급진 개화파의 활동 - 박문국(출판 기관) 설치하여 우리나라 최초 신문인 한성순보 창간

- 도로 정비, 경찰·우편 제도 도입

청의 내정 간섭과 민씨 정권의 친청 정책으로 개화 정책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한편 민씨 정권(고종이 친정을 한 기간. 왕비의 친족들이 정부 주요 관직 차지)과 묄렌도르프는 재정난 해결 위해 당오전 발행하려 함

이에 반대한 김옥균은 일본에서 차관 얻으려 시도

차관 교섭 실패로 끝나면서 급진 개화파의 정치적 입지 좁아짐

 

<역사 다가가기> 급진 개화파의 차관 교섭이 실패하다
국고가 부족하여 ...우리나라에서 은화와 아울러 상평통보 1개가 5문에 해당하는 것을 주조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감당할 수 없다. 이에 외채를 들여와 병비, 광산 등에 종사하라는 국왕의 명을 받았다. -한국차관관계잡찬
(김옥균)는 자금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지금 빈손으로 귀국하면 집권 사대당은 나를 비판하며 궁지에 몰아놓을 것임을 알고 있다....우리의 개혁안도 없어질 것이며 조선은 청국의 속국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당과 사대당은 공존할 수 없기에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후쿠자와 유키치전
1880년대 초 국가 재정의 위기를 둘러싸고 미씨 정권과 급진 개화파의 대립이 극심해짐. 당시 민씨 정권의 입장을 대변했던 묄렌도르프는 당오전을 주조해야 한다고 주장. 반면 김옥균 중심의 급진개화파는 당오전 주조가 근복적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일본에서 차관 들여와 재정 문제 해결하려 함. 하지만 이러한 차관 교섭 시도는 일본 정부의 차관 정책이 변하면서 시패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급진 개화파는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을 계획을 세웠다.
급진 개화파의 차관 교섭 실패가 미친 영향: 정치적 입지 좁아져 정변을 통해 정권 차지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2. 갑신정변(1884)

답례 사절단으로 미국 갔다 돌아온 홍영식은 고종에게 근대적 우편 제도 실시 제안.
이에 우편 업무 관장하기 위해 우정총국 설립. 우정총국 개국 축하 연회 열리던 날,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개화파 관리들은 정변을 일으켰다.

<우정총국>

(1) 배경 : 조선에 주둔한 청군의 절반 철수(베트남 문제로 청이 프랑스와 전쟁이 일어날 조짐 보임)

이 틈에 민씨 정권 몰아낼 계획 세우고 일본의 군사적 지원 약속 받음

 

(2) 전개 :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 때 민씨 정권 핵심 인물 제거하고 개화당 정부 수립

개혁 정강(청에 대한 사대 관계 청산, 내각 제도 수립, 문벌 폐지하여 인민 평등권 보장,

재정을 일원화하고 군사·경찰·재판 제도 개혁 도모 발표)

3일 만에 실패(청이 정변 진압, 일본군이 약속 어기고 철수)

급진 개화파는 일본 공사관에 피신했다가 일본으로 망명

 

갑신정변의 전개 과정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해서 찍은 사진

(3) 결과

한성 조약 (조선-일본) (일본 공사관 불타고 사상자 책임 물어) 배상금, 공사관 신축비 받음
톈진 조약 (일본-) 조선에서 양국 군대 철수, 조선에 군대 보낼 때 상대국에게 미리 알리도록 규정

 

(4) 의의와 한계

의의 : 자주적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최초의 정치 개혁 운동 이후 근대화 운동에 영향을 줌

한계 : -(소수 지식인 중심의 )위로부터의 근대화 운동으로 민중의 지지 이끌지 못함,

- 일본의 군사적 지원에 의존

<자료> 갑신정변의 개혁 정강
1. 잡혀간 흥선 대원군을 곧 돌아오게 하고 청에 조공하는 허례를 폐지한다.
2.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권을 제정하고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한다.
3. 지조법을 개혁하여 부정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며 재정을 넉넉하게 한다.
8. 급히 순사를 두어 도둑을 방비한다.
9. 혜상공국(보부상)을 혁파한다.
11. 4영을 합하여 1영으로 하고 영 중에서 장정을 선발하여 근위대를 설치한다.
12. 재정은 모두 호조에서 관할하게 하고 그 밖의 재무 관청을 폐지한다.
13. 대신과 참찬은 궁궐 내의 의정소에서 회의하고 국왕에게 아뢰어 정령을 집행
   한다
.

14. 의정부와 6조 외의 불필요한 기관 없애고, 대신 참찬이 논의하여 보고한다.
-김옥균 갑신일록
갑신정변 개혁 정강은 김옥균이 일본으로 망명했을 때 갑신일록에 실려 있다. 원래 80여 개 조항이었는데, 현재 14개조만 전한다.
3지조법은 토지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부과하는 세금을 규정한 법이다. 조선에서도 조세를 토지에 부과하였기에 일본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13항의 의정소는 경복궁 밖에 있던 의정부와는 별도의 기구로 경복궁 안에 세웠다. 개화당 정부는 의정소에서 법령을 제정하고 국왕의 재가를 받아 집행하는 정치 형태를 구상했다.

 

3. 열강의 대립과 고종의 자주독립 정책

(1) 거문도 사건(1885)

배경 : 갑신정변 후 고종은 내정과 외교 담당하는 기구를 의정부로 통합하고 정국 운영권을 의정부로 넘기려 함

청의 내정 간섭 심화

고종이 청을 견제하기 위해 조러 비밀 협약 추진 (러시아와 우호 강화)

전개 :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러시아와 대립하던 영국이 러시아 남하 견제하려고)

조선의 항의와 2년 뒤 청의 중재로 거문도에서 물러남(1887)

(2) 조선의 중립국화 :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대립 커지자 조선을 중립국으로 삼자는 의견이 나옴

독일의 부들러, 유길준이 주장

 

(3) 고종의 자주적 개화 정책 : -내무부 설치하여 군사, 재정, 외교 등 업무 맡게 함

-박문국 다시 설치하여 한성주보 간행

-전환국(화폐 주조 기관전운국(조세곡 운반 기관)을 내무부에서 운영,

-육영 공원, 연무 공원 등 설립하여 외국인 교사와 군사 교관을 초빙

막대한 비용 들여 추진한 근대화 정책은 농민의 조세 부담을 높임

청의 간섭 벗어나려고 외교 활동(일본, 미국에 공사관 설립 등)

고종의 근대화 정책은 청의 압력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어려움 겪었다)

<전운국>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3도의 조세곡 운반을 담당. ‘전운서라고도 함

 

<동아시아의 근대화를 위한 여러 주장>


이홍장






후쿠자와 유키치






김옥균

서양식 기계는 농경이나 직포, 인쇄, 도자기 등과 관련된 기구를 모두 만들 수 있고, 백성의 생계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처럼 기계의 뛰어난 점은 물이나 불의 힘을 빌려 인력과 자재의 장비를 줄이는 데 있습니다. 중국의 위기를 안정으로 돌리고 허약함을 강력함으로 바꾸는 길은 전적으로 기계를 모방하여 제조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 문명의 바람이 점차 동아시아에도 불게 되었습니다. 서양이 주도하는 문명개화의 기세에 맞서 동양의 나라들이 이를 끝까지 막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상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우리 일본은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양 문명국과 진퇴를 함께하고 조선과 중국을 대하는 태도도 서양인이 이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세계는 상업을 주로 하여 산업의 크고 많음을 서로 경쟁하는 때입니다. 양반을 없애고 그 뿌리를 뽑지 않는다면 국가의 패망을 기다리는 꼴이 될 뿐입니다. 하루빨리 문벌을 없앤 뒤 인재를 골라 중앙 집권의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또한 학교를 설립하여 인민의 지식을 깨우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외국의 종교를 들여와 교화를 돕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것입니다.
근대화
방향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도입
-양무운동, 중체서용
서양 주도하는 문명개화 서양의 정신까지 받아들여 신분제 철폐 등 근대화 이루자
한계 사상·제도가 개혁되지 않았다.
중국 유교문화는 그대로 유지
일본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조선과 중국을 침략의 대상으로 삼음 민중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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