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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의 대화체와 독백체

별뜨락 2022. 2. 16. 23:15

시를 읽을 때, 

어떤 시는 혼자서 중얼거리는 듯한 문장 (화자가 화자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고요~

또 어떤 시는 청자가 설정되어 있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듣는 이가 없이 혼자서 자기에게 말하는 방식이 독백체이고요,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대화체이랍니다.

아래 시에서는 화자 '나'가 직접 나타나 있는데요,
화자 혼자서 말하는 독백체로 표현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아래 가사는 농부와 화자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체로 표현되었다는 걸 알 수가 있어요.

'누항사' -박인로-

어와 긔 뉘신고 (농부)
염치 업산 내옵노라. (화자)
초경도 거읜대 긔 엇지 와 겨신고 (농부)
연년에 이러하기 구차한 줄 알건마는 (화자)
아래 작품은 아우와 형님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체로 되어 있네요.

'시집살이 노래'

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어떱뎁까 (아우)
이애 이애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형님)

이렇게만 보면, 독백체와 대화체는 크게 어려울 것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쉬운 개념을 굳이 배워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렇게 쉬워보이는 개념도 깊이 있게 공부해 두지 않으면, 

문제로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적잖이 당황하게 된답니다.

 

특히 독백체보다는 대화체를 묻는 문제가 국어 문제로 나왔을 때,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얼핏 보기에 독백체처럼 보이는 시가 알고 보면 대화체의 방식이기 때문이에요. 

 

아래 시 '사령'은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은 아니어서,

독백체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하지만 이 시에서 화자는 '벗'이라는 청자에게 말을 건네는 어투로 표현하고 있답니다.

비록 '벗'이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아도, 

화자가 '벗'에게 말을 건네고 있기에, 이 시에서는 '대화체'로 표현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령' -김수영-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아라


모두다 마음에 들지 않아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이제 눈치 채셨나요?

시에서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지는 않아도 (겉으로 보기에 화자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도),

'청자'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방식이라면, 그 시는 '대화체'로 나타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볼게요.

'달. 포도. 잎사귀' -정만영-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위 시에서도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형식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화자는 '순이'라는 청자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따라서 위 시도 '대화체'로 쓰여진 시인 거예요.

 

이렇게 해서 시에서의 독백체와 대화체를 알아보았는데요,

독백체와 대화체에 대한 개념을 좀 더 확실하게 잡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직접 독백체와 대화체의 어투로 시를 지어보시는 것도 좋을 거예요.

 

그래서 저도 아주 빠르게

같은 내용으로 독백체와 대화체를 이용해 시를 한 편씩 지어보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줍잖은 실력으로 시 두 편 올려보네요~

-잘 안 나오는 볼펜-  독백체

잘 안 나오는 볼펜을
꾹꾹 누르고
몇 번 덧쓰다가
내다버릴까,

10년 된 외투,
팔꿈치 맨질맨질해진 외투 입고
10년 더 된 자전거,
낡은 자전거 타던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잘 안 나오는 볼펜
뚜껑 잘 닫아
연필통에 곱게 넣어두어야지.


-잘 안 나오는 볼펜 -대화체

아버지,
잘 안 나오는 볼펜을
꾹꾹 누르고
몇 번 덧쓰다가
내다버리려고 할 때,

10년 된 외투,
팔꿈치 맨질맨질해진 외투 입고
10년 더 된 자전거,
낡은 자전거 타던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잘 안 나오는 볼펜
그대로 뚜껑 닫아
연필통에 곱게 넣어두었답니다.

여기까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건강하고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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