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네 집

사명대사의 생애 및 사명대사 유묵 본문

이카네 문화산책

사명대사의 생애 및 사명대사 유묵

별뜨락 2019. 12. 13. 23:35

'사명대사'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승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이죠. 그런데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이후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가 않아요. 사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시기뿐만이 아니라, 양란이 끝난 이후에 큰 임무를 맡아, 중요한 업적을 많이 남긴 인물이기도 해요.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사명대사의 생애에 대해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또한 현재 일본에 전해지는 사명대사의 유묵에 대해서도 알아볼 거예요. 사명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다루는 데에는 사명대사의 유묵을 빠뜨릴 수가 없기 때문이죠.


먼저 아래 동영상을 통해, 사명대사의 생애와 사명대사의 유묵에 대한 이해를 도와 드릴게요.




01 사명대사의 생애

사명대사는 조성 중기의 고승이에요.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사명대사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자, 김천에 있는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의 제자가 되었어요. 시간이 지난 뒤 사명대사는 직지사의 주지가 된 이후로 선을 닦으며 지냈어요.

그러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는 위기에 빠진 백성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흉악한 무리로부터 백성을 직접 구하기로 마음 먹은 사명대사는, 의병이 되어 왜군과 직접 맞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용감하게 왜군들과 싸움을 하던 사명대사는 평양성 탈환의 전초 역할을 해내었습니다. 그런 뒤 서울 근교 삼각산 노원평, 우관동 전투에서도 사명대사는 큰 전공을 세웠으며, 이에 선조는 사명대사에게 '선교양종판사'를 제수하였습니다. 


왜란이 끝난 뒤에, 사명대사는 휴전협정에도 참가하였는데, 사명대사는 '조선 땅을 반으로 나눈 뒤 일본 땅을 삼으려던' 일본의 야욕이 관철되지 않도록 크게 노력하였습니다. 사명대사는 이와 같이 조선의 분할을 막으려고 애쓰는 한편, 일본의 재침략에 대해서도 대비하였습니다.


사명대사의 예상대로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략했고, 이때에도 사명대사는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조선을 위해 싸웠습다. 


하지만 양란의 결과, 조선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처참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아픈 상처와 적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사명대사는 마음 속에 있던 슬픔과 원망을 비워내고, '평화'로 마음속을 가득 채워넣었습니다. 그런 뒤 일본이 화해 요청을 해오자, 사명대사는 전후처리와 산적한 외교교섭을 위해 외교관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사명대사가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사명대사의 인품과 학식을 알고 있던 일본의 많은 승려들이 사명대사를 찾아왔습니다. 그 중 '엔지'라는 승려는 사명대사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때 사명대사는 엔지에게 여러 가르침을 주며 엔지에게 시, 편지 등을 적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시, 편지는 사명대사의 유묵이 되어, 일본에 남아 있습니다.) 그 이후로 일본에는 선종이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마침내 사명대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쓰를 만나게 되었고, 그 결과 일본으로 잡혀갔던 1390여 명의 포로를 데리고 귀국했습니다. 




지금까지 사명대사의 생애와 사명대사의 유묵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사명대사가 활약했던 시간으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 우리 후손들은 사명대사를 생애를 통해, 

용기와 평화로 백성을 구하고자 했던 사명대사의 마음을 되새길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