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네 집

터널 : 2050 아라크네 스토리 본문

이카네 문화산책

터널 : 2050 아라크네 스토리

별뜨락 2020. 1. 23. 21:28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요?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이 우리의 생활을 행복하고 편리하게 해줄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예기치 못한 불행을 몰고 올 수도 있겠죠.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미래의 모습이지만, 그 모습을 아주 짧게나마 스케치해 보았습니다. 설익은 생각이 담겨있는 스토리이지만, 앞으로 좀더 발전시켜 보려합니다.



터널 : 2050 아크라네 스토리


1. G 연구소

G 연구소 앞에서 이든은 사직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 길이 아니야.’

어렸을 적 이든은 환경운동가가 꿈이었다. 플라스틱과 미세 플라스틱으로 뒤덮여가는 지구를 보면서, 이든은 어떻게든 지구가 오염되는 걸 막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굿버그가 나타난 것이다. 플라스틱과 미세 플라스틱을 먹어치워서 새로운 거름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로봇, 굿버그! 이든은 굿버그를 보자마자 단숨에 진로를 바꾸어버렸다. 인공지능 기술이야말로 깨끗한 지구 환경을 구현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든은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G 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 인공지능 연구과 기술 개발은 환경과는 무관해 보였다. 또 일을 하면 할수록 이든 자신이 기계가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2050년인 지금, 나를 제대로 들여볼 수 없다면, 나의 미래도 없어!’

사직서를 제출할 결심을 하며, 이든은 G 연구소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런 이든에게 누군가 고함을 질러댔다.

이든! 어서 G 터널 현장으로 이동해! 터널이 붕괴되었어!”

 

2. G 터널 앞

G 터널은 G 연구소가 최고의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만들어낸 터널이다. 수십년 동안의 터널 안전 데이터를 축적한 뒤 딥러닝을 통해, 세계 최고의 터널 안전 시스템을 구축한 터널이다.

정말 이상해. 터널 붕괴 조짐이 있었다면, 자동 안전장치가 가동되어, 저렇게까지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을 텐데.’

이든은 이마를 잔뜩 찡그리며,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뭐야! 사람들이 갇혀 있잖아!”

모니터 안에서 터널 안의 상황이 영상화되어 펼쳐졌다. 실시간 얼굴 탐색 장치로 사람들의 신원까지 모니터 화면에 나타나자, 이든은 서둘러 사람들의 탈출을 돕는 여러 개의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아무리 버튼을 눌러보아도, 작동이 되는 버턴은 하나도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뭐지?’

당황하는 이든의 눈앞에 모니터의 영상이 들어왔다. 화면 속에는 천장을 지지하고 있는 천장 버팀대가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가라앉고 있는 천장 버팀대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굿버그가 있었다.

 

이든은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깨달았다. 그동안 굿버그는 플라스틱과 초미세플라스틱을 먹은 뒤, (그들의 내부에서 유기 화합 반응을 일으키는 과정으로) 그걸 흙과 비슷한 거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먹이인 플라스틱 쓰레기도 점점 줄었고, 결국 굿버그는 굶주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만을 먹이로 삼게 되어있던 굿버그가, 어떻게 다른 재료들을 먹게 된 거지? 그들의 인공지능 명령 체계에 도대체 무슨 변화가 일어난 거지?’

이든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혹시 굿버그에게 자의식이 생긴 걸까? 자의식이 생겨서 사람처럼 생각해서, 자신들의 행동 방향을 스스로 수정해 버리기라도 한 거야?’

이든은 서둘러야만 했다. 터널 안 사람들의 목숨을 생각하면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터널 안의 장치들이 작동을 못 하게 되었으니, 내가 직접 터널을 뚫을 수밖에.’

이든은 휴대용 인공지능 장비들을 몸에 장착하고, 터널을 향해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3. G 터널 안에서

이든은 가까스로 터널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이든 앞으로 굿버그들이 몰려들었다. 납작한 풍뎅이처럼 생긴 굿버그는, 소형 자동차만 한 크기였다.

굿버그들 너머로 차량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떨고 있었다. 사람들이 탄 차들은 벌써 굿버그의 먹이가 된 듯했다.

저 정도의 먹성이라면, 이 도시도, 아니 이 나라도 금방 사라지게 될 거야!’

이든은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그때였다. 굿버그 한 마리가 이든의 허리춤에 달려있는 인공지능 장비 하나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 내가 여기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이든은 절망스러웠지만, 마지막으로 힘을 내보기로 했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보는 거야!’

이든은 굿버그들의 목적함수를 바꿔보기로 했다. 목적함수란, 인공지능의 목적을 설정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도록 하는 함수를 말한다. 이든은 플라스틱과 미세 플라스틱을 찾아서 게걸스럽게 먹도록 되어있는 굿버그들의 목적을, 단순히 쓰레기를 찾는 목적으로 바꾸어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굿버그들한테 자의식이 생기지 않았다는 걸 전제로 한다. 만약 이미 굿버그들한테 자의식이 생겨난 거라면, 굿버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스스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4. 그들의 승부

이든은 자신의 휴대용 컴퓨터를 꺼냈다. 이든은 지금까지 G 연구소에서 갈고 닦은 지식과 기술을 끌어 모아, 굿버그들을 물리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이 굿버그들은 다시 먹이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중 어떤 굿버그들은 천장 버팀목 쪽으로 갔다. 그러더니 굿버그들은 천장 버팀목을 사정없이 잡아당겨 그들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마다 천장은 점점 내려앉았다.

이든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머릿속에 떠올린 것들을 행동으로 옮겼다. 먼저 이든은 자신의 휴대용 컴퓨터와 굿버그들의 신경망을 연결했다. 그 다음에 굿버그들의 알고리즘을 새로 입력하는 작업을 했다. 그러는 동안 굿버그들이 이든의 장비들을 호시탐탐 노렸지만, 용케도 이든은 그걸 피했다.

다 되었어! 마지막 버튼만 누려면 돼!’

이튼은 눈을 질끈 감으며 버튼을 눌렀다.

, 제발. 굿버그들이 먹는 행동을 멈추어야 할 텐데.’

잠시 후 이든은 감았던 눈을 떠보았다.

, 세상에.”

이든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게걸스럽게 사방을 물어뜯던 굿버그들이 입을 다물어버린 것이다.

 

5. G 터널 밖으로

한동안 터널 주변은 혼잡했다. 터널 속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빠져나오고, 얌전해진 굿버그들도 터널 밖으로 나왔다. 달라진 굿버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든은 뭔가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굿버그들이 아무 거나 먹어치우게 된 건……. 누군가가 굿버그들의 목적함수를 바꾸어놓았다는 거지!’

이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이든의 머릿속에 아라크네가 떠올랐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라크네. 아라크네는 그 누구보다도 옷감을 짜는 기술이 뛰어났지만, 스스로의 오만함으로 파멸하게 된 존재이다.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뛰어난 과학 기술로 발전된 인간 문명을 만들어나가고 있지만……. 우리의 기술에 대해 자만하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는다면, 결국 아라크네와 같이 파멸하게 되겠지.’

갑자기 이든은 주머니에서 사직서를 꺼내 찢었다.

, 우리가 아라크네처럼 되게 할 수는 없지. 아직도 내가 G 연구소에서 할 일이 많은 것 같아.’

이든은 고개를 들어, G 터널 너머로 맑고 깨끗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