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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네 집
10.27 법난을 통해 본 인권교육 본문
10.27 법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국가의 권력 남용으로 개인의 인권이 유린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불교라는 종교와 무관하고, 또 오래전에 벌어진 사건이라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사인이기에 한동안 10.27 법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되새기기 위하여, 제 나름의 스토리텔링을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가 직접 창작한 법난 소재 스토리텔링을 소개할까 합니다.
(창작자의 노력과 열정을 생각하시어, 표절이나 퍼가기는 삼가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10월, 선우행자의 노래
1
날이 흐렸다. 법당 안으로 어슴푸레한 빛이 비쳐 들어왔다. 서원문을 들고 있는 선우행자는 손끝이 살짝 떨리면서, 비몽사몽간 한 자락 연기처럼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저희들이 세속의 모든 인연과 티끌을 멀리 떠나 출가하여 계를 받고자 하는 것은.”
서원문을 낭독하기 시작하자 선우행자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행자 수계 교육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수행자의 길로 들어서야 할 그가 아니던가.
온갖 번뇌망상이 그의 머리와 마음속에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뿌옇던 새벽 하늘, 진혜 스님, 멀리서 들려오는 군용차 소리……. 바람이 소용돌이를 일으켜 그의 마음속에서 두려움을 끄집어내자, 곧 그는 15 년 전 그날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버렸다.
2
동우는 법당 앞에서 처음 진혜 스님과 만났다. 이른 봄의 차가운 공기가 동우의 코끝에 내려와 앉은 지 꽤 오래되어 보였다. 진혜 스님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동우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야, 어째서 혼자 여기에 있는 거니?”
동우는 아무 대답도 없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일곱 살이던 동우는 진혜 스님을 천천히 훑어보더니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엄마가 여기에서 꼭 있으랬어요. 엄마가 다시 올 때까지요.”
동우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조그만 얼굴은 엄마와 함께 걸어왔던 길을 향했지만, 어둑해질 때까지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창백해진 동우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두워지자 진혜 스님은 동우를 방으로 데려왔다. 동우는 방 안을 둘러본 다음 구석진 곳으로 가 앉았다. 그런 다음 진혜 스님을 올려다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엄마 언제 와요?”
“그래, 날이 밝으면 알아보도록 하마. 너와 내가 부처님과의 인연으로 여기에서 만났을 것이니, 마음 편하게 먹고, 오늘밤은 푹 쉬거라.”
진혜 스님은 동우에게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바지 대님을 푼 다음 자리에 누웠다.
다음 날부터 진혜 스님은 동우 엄마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으나 끝내 찾지는 못했다. 동우 엄마를 찾아내기가 어려워지자, 진혜 스님은 동우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을 집중시켰다. 저 어린 동우의 거취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진혜 스님의 마음속에 또렷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결국 진혜 스님은 동우를 함께 데리고 살기로 했다.
해가 밝은 날에도 동우의 기분은 밝지가 않았다. 잠결에 ‘엄마’를 애타게 부르기도 했다. 흐릿한 눈으로 엄마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그때마다 동우 마음속의 빈자리를 메워준 것은, 진혜 스님이었다. 아이를 다루는 방법 같은 건 몰랐지만,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며 몸과 마음을 수양해나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동우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동우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찰을 오가는 신도들을 보면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예불이 시작하기 전에는, 법당 앞에 벗어놓은 신발들을 가지런하게 정리도 했다. 조그마한 손으로는 공양 일손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행을 마치고 일어서는 진혜 스님 앞으로 동우가 달려왔다. 동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스님, 제가 노래를 하나 만들었어요.”
동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허허. 네가 노래를 다 만들 줄 아는구나.”
동우를 바라보는 진혜 스님의 얼굴에 벙싯 웃음이 터졌다.
“네. 조금 더 연습해 본 다음, 내일 스님께 노래를 들려 드릴게요.”
“지금이 아니고,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네, 내일입니다.”
진혜 스님은 동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이른 새벽, 진혜 스님이 새벽 예불을 드리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둔탁한 차소리가 들렸다. 두툴두툴한 산길을 올라오는 차소리는 마치 성난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동우가 잠든 방을 번쩍, 하고 비추었다.
잠에서 깨어난 동우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생각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아니면 혹시…….’
문득 동우는 엄마 생각이 났다. 어쩌면 엄마가 급하게 동우를 데리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동우의 가슴이 마구 뛰었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엄마를 보면, 반가워하지 않을 거야. 화를 낼 거야. 그렇지만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면……. 그러면 엄마를 용서해 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동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빠끔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 건장한 덩치의 군인들이 군화도 벗지 않은 채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 세상에!’
진혜 스님이 끌려나오는 게 보였다. 영문도 모르는 진혜 스님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자, 군인 한 명이 군홧발로 진혜 스님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더러운 중 같은 주제에!”
군인 한 명의 소리가 산속에 울려 퍼졌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 건지…….”
진혜 스님이 옆구리를 움켜쥐면서 말을 하자, 군인은 진혜 스님의 뒷덜미를 더 세게 움켜잡았다.
“여기서 그러지 말고, 대질 신문할 때 대답이나 잘 하라고!”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저걱저걱 울리는 군화 소리 사이로 진혜 스님의 읊조리는 소리가 언뜻언뜻 들렸다. 문밖으로 그걸 바라본 동우는, 몸이 싸늘하게 얼어붙는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두 계절이 훌쩍 지났다. 누군가 일주문에서 법당을 향해 반배를 올렸다. 그런 다음 똑바로 서서 왼쪽으로 걸어 나갔다. 오른쪽 발끝에 상처가 깊었던 그는, 걸을 때마다 다리를 절뚝거렸다. 법당 앞에 서자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다. 부처님 앞에 섰을 때는, 비탄에 잠긴 그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질 때, 그의 뒤에서 동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진혜 스님!”
동우의 소리가 법당 안을 울렸다. 그는 몹시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더니,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3
1980년 10월의 그날로부터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진혜 스님은 사찰에서 쫓겨나 승복을 벗었다. 그리고는 동우의 아버지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형편이 넉넉한 아버지는 못 되었다. 이미 그의 몸은 변변한 일자리 하나 얻지 못할 지경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몸이 패일 정도로 상처가 났던 자리마다 흉터가 생겼고, 흉터가 있는 곳에서는 수시로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아버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동우가 아무리 물어보아도, 그는 입을 굳게 닫았다.
그날 그를 끌고 갔던 건 계엄사령부의 합동수사본부 합동수사단이고, 그가 끌려간 곳이 보안사 사무실이었다는 건 동우도 이미 알고 있었다. 동우의 주위에 있던 보살님들에게 얼핏 들어서였다. 그러나 그곳에 끌려갔던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보안사 사무실에서 승복이 벗겨질 때 흔들리던 희미한 불빛. 험상궂은 그들이 고통을 가할 때마다 얼룩지던 그의 몸. 육중한 그들의 몸에서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쓸 때마다 쏟아지는 신음소리. 결국 어떠한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그의 굳센 믿음이 허물어졌고, 그는 허위 자백을 하고 그곳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그곳을 빠져나올 때 그는 생각했다. 이 끔찍한 고통을 동우에게는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왜 그랬을까? 동우에게 커다란 번뇌 하나를 얹어주고 싶지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육체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허위자백을 했다는 자책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타오르는 햇빛이 투명하던 어느 날, 그는 그의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몹시 가쁜 숨을 힘겹게 몰아쉬며 동우를 불렀다.
“동우야, 너는 내가 부처님 앞에 떳떳하다는 걸 아느냐?”
“아버지가 부정 축재를 하고 이성에 문란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죠. 제가 곁에서 지켜봤잖아요. 그들은 아버지와 불교를 욕되게 하려고, 거짓을 주장한 거예요.”
“그래, 그 진실을 부처님과 네가 알고 있구나.”
그는 나른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쫓아내면서 말했다.
“그런데 동우야, 이젠 그때 그들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너에게 고백해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그는 기억을 하나씩 되짚어가며 동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는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수행하듯이 인내하면서 마침내 묻어두었던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며칠 뒤, 그는 영원히 눈을 감고 말았다. 세상을 떠나는 그의 모습 속에는, 진혜 스님으로 살았던 10년 전이 얼굴이 비치었다.
4
선우 행자의 머릿속에 진혜 스님에게 벌어졌던 일이 맴돌았다. 사람들이 ‘10.27 법난’이라 부르기 시작한 그 일이. 그러나 선우 행자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이름 뜻을 헤아렸다. 선우(가릴 선, 집 우)란, 몸과 마음을 담은 집을 헤아릴 줄 아는 수행자가 되기 위해 지은 이름이었다.
‘난 더 이상 동우가 아니다. 법난의 고통 속에서 낙담하고 좌절만 하던 동우가 아니다.’
선우 행자는 숨을 크게 내쉰 다음, 서원문을 낭독하는 데에 집중했다.
“오늘의 수계 공덕을 우주 모든 중생들에게 베풀어 악도와 사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깊고 넓은 행업을 성취하도록 하겠나이다.”
선우 행자의 목소리가 법당 안에 울려 퍼졌다.
낭독이 끝나자 선우 행자의 머릿속이 맑아졌다. 번뇌는 사라지고, 부처님이 선우 행자의 안에 있게 되었다. 그러자 선우 행자의 마음속에는 법난의 진실을 널리 알릴 용기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법난의 가해자들이 진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게 될 때,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부처님의 자비를 베풀 마음까지도 지니게 되었다.
문득 선우 행자는, 법난의 진실을 알리고 자비를 베풀기 위한 노래를 만들고 싶어졌다. 15년 전 10월, 진혜 스님에게 불러주지 못했던 노래가 생각나서였다.
선우 행자가 생각한 노래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아니 20년도 더 지난 뒤에도 사람들에게 법난을 알릴 수 있는 노래이다. 또 용서와 화해를 통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 수 있는 노래이다. 그 노래가 완성될 날을 머릿속에 그려보는데, 선우 행자의 얼굴에 빙긋이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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