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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네 집
발끝에서 피어난 꽃 본문
발끝에서 피어난 꽃
어릴 적 나는 방학 때만 되면 할머니가 계시는 큰댁에 맡겨졌다. 큰댁은 도시에 있던 우리집과는 전혀 딴판인 곳이었다. 포장도 안 된 큰길을 걸으면 구수한 흙냄새가 났고, 동네 골목길을 걸으면 낮은 담장마다 피어난 작은 꽃들이 보이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의 일과는 단순했다. 할머니를 따라 다니며 과수원과 밭을 놀이터 삼아 노는 게 다였던 나는, 흙을 파헤치기도 하고 사과나무에 매달리기도 하며 풀을 뜯어 소꿉놀이도 하였다. 시멘트가 바닥의 흙을 막아버린 우리 동네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할머니 옆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어둠이 짙게 깔리면, 그때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 동네가 어린 나에게는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특히 무더운 여름날이 되면, 더위를 식히려고 한지 바른 격자문을 활짝 열어놓았는데, 그 앞으로 암흑이 까마득하게 펼쳐져 있는 게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늦은 저녁이었다. 조촐한 시골의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던 사촌 오빠들이 갑자기 마당으로 몰려나가는 거였다.
‘마당에 무슨 일이 있나? 왜 오빠들이 한꺼번에 마당으로 나갔을까?’
나는 오빠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오빠들을 따라 마당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두컴컴한 마당을 극복해 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마당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톡, 톡, 톡, 톡, 톡’ 어두운 저녁을 가로지르는 경쾌한 소리! 나는 두 귀를 쫑긋하고 ‘톡, 톡, 톡’ 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시던 할머니께서 문 앞에 내 신발을 갖다 놓으시더니,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아끄시는 거였다.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갔다.
‘저게 뭐지?’
사촌 오빠들은 다리를 접었다가 펴면서 제기를 차고 있었다. 제기는 큰댁 격자문에 붙어 있던 헌 창호지를 재활용해서 만든 거였다. 그런데 제기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떨어지면서 만들어지는 모습에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제기의 술이 나풀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제기가 발끝에 닿을 때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제기 꽃! 하늘의 둥근 보름달이 은은한 조명처럼 비추는 곳에서 피어난 제기 꽃! 제기 꽃을 알게 된 그날 이후, 나는 시골의 밤을 예전처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또 격자문에서 떼어낸 헌 창호지만 보면, 할머니에게 제기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제기 만든 헌 창호지가 없을 때는 일부러 격자문에 붙은 창호지에 구멍을 낸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게 벌써 3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많은 게 변화했다. 내가 어린 시절 보고, 느꼈던 ‘제기 꽃’ 같은 건, 앞으로 더이상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하긴 했다.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걸, 우리 아이들도 볼 수 있다면 …….’
그런데 얼마 전 중학생인 큰 아이가 제기를 차야 한다고 했다. 체육 수행평가로 제기차기 연습을 하게 된 아이 덕분에 우리집은 한동안 제기꽃이 활짝 피어났다. 또 아이가 찰 제기를 가족들이 함께 만들기도 했었다. 물론 우리 아이는 환한 LED 조명 아래에서 헌 비닐봉지를 이용해 만든 제기로, 제기차기를 찼지만, 가족과 함께 제기를 찼던 경험이 아이의 마음속에 제기꽃을 심어놓았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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