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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로봇, 덩보

별뜨락 2020. 8. 3. 20:39

다음 동화의 저작권은 '이카네 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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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로봇, 덩보


덩보는 놀이공원에서 춤추는 로봇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덩보는 무대 맨 뒷자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여기에서는 내가 춤추는 게 하나도 안 보이겠어.’

덩보는 기운이 쭉 빠졌다.

사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덩보의 자리는 무대 맨 앞이었다. 그때는 덩보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 저 로봇 좀 봐!”

공연을 보러 온 아이들은 덩보에게서 눈을 뗄 줄 몰랐다.

확실히 덩보의 춤은 다른 로봇과는 달랐다. 덩보가 공중으로 높이 올랐다가 뱅그르르 돌면, 지켜보던 아이들의 눈동자도 빙그르르 돌았다. 덩보가 미끄러지듯 내려와 딱 서면 주위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 어떻게 춤을 저렇게 잘 출까?”

덩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덩보는 뛰어오르는 힘이 점점 줄어들었다.

, 왜 이러지? 부품이 고장 났나?’

덩보는 멋진 춤을 추고 싶어서 애를 썼다. 무릎 부품을 바꾸고, 춤 연습도 더 많이 했다. 그렇지만 덩보의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를 않았다.

춤을 추는 게 예전 같지 않으니까, 자신감도 사라졌다. 그러다 실수도 했다. 처음에는 넘어지더니 나중에는 엉덩방아를 찧고 무대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럴 때마다 덩보는 뒷자리로 밀려났고, 기어이 덩보의 자리는 무대 맨 뒤가 되고 말았다.

공연이 시작되려고 하자 덩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예전처럼 춤을 출 수 있을까?’

덩보는 발뒤꿈치를 들고 무대 앞쪽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그때 덩보의 눈에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왔다. 언제 왔는지 비둘기는 무대 위를 걷고 있었다. 그 순간 덩보는 비둘기가 동아줄처럼 보였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덩보는 잠시 눈을 감고 상상을 해보았다. 비둘기를 잡고 위로 올라갔다가 뛰어내릴 자신의 모습을.

빙글빙글 돌면서 아래로 내려가면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겠지?’

비둘기를 잡고 어느 정도 올라가기만 하면, 나머지는 자신이 있었다.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 다시 사랑을 받게 될 거야.’

덩보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런 다음 아무도 모르는 틈에 몸을 바짝 낮췄다. 비둘기 쪽으로 슬금슬금 기어갈 때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비둘기까지 몇 발자국 안 남았을 때는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도 했다.

지금이야!’

덩보는 비둘기 다리를 잽싸게 낚아챘다.

, 성공이다!’

덩보는 비둘기 다리가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잡았다. 그러자 놀란 비둘기는 날개를 파닥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구구 구구구구 구구.”

이제 덩보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순식간에 비둘기가 너무 높이 올라와 버린 것이었다.

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닌데…….’

덩보는 겁이 덜컹 났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니까 다리가 후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 어떡하지?’

덩보는 비둘기를 아래로 내려가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정없이 비둘기의 깃털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럴수록 비둘기는 더 높고 빠르게 날았다.

삘리릭 삐리리릭!”

덩보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여기 좀 봐 주세요!’라는 뜻이었지만, 로봇이 내는 소리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덩보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내면서,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날아갔다.

 

. 땅에 떨어진 덩보는 정신이 없어서 눈앞이 핑핑 돌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비둘기를 놓친 덩보가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모든 게 엉망이 되었어.’

덩보는 입을 빼죽 내밀었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야?’

덩보가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바로 앞에 있는 이발소에서 문이 열렸다. 낡은 이발소에서는 이발사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덩보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는 덩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이게 뭐지?”

할아버지는 덩보 쪽으로 다가오더니 고개를 내밀었다.

오호, 작은 강아지만 하게 생겼네.”

할아버지가 가늘게 뜬 눈으로 덩보를 훑어보았다.

삐리릿!”

덩보는 당황해서 머리 위에 있는 안테나가 쭈뼛 일어났다.

아이들 장난감인가? 아니면 로봇인가?”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두 팔을 뻗쳐 덩보를 번쩍 집어 들었다.

덩보는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비둘기를 잡고 하늘을 나는 동안 힘이 빠질 대로 빠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삘리릭 삐리리릭!”

덩보는 남은 힘을 다해서 소리를 냈다. 덩보한테서 손을 떼라는 뜻이었지만, 할아버지가 그 소리를 이해할 리는 없었다.

이발소에 들어간 다음 할아버지는 창가 자리에다가 덩보를 앉혔다.

이 자리가 좋겠구나.”

잠시 후 할아버지는 돋보기 안경을 꺼내썼다. 그리고 덩보에게 얼굴을 바짝 갖다 대었다. 덩보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칠까 봐 일부러 두 눈을 도르륵 굴렸다. 그러자 덩보의 눈에 이발소 구석구석에 있는 물건들이 들어왔다. 뿌연 거울, 터진 의자, 손잡이가 닳은 머리빗, 빛바랜 수건…….

내가 이런 고물 창고 같은 곳에 있게 되다니.’

덩보는 놀이공원에 있는 고물 창고가 생각났다. 그곳은 낡거나 고장이 나서 춤을 못 추게 되는 로봇들을 쌓아두는 곳이었다. 덩보는 자신이 이런 데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다시 반짝반짝 빛나는 놀이공원 무대로 돌아가고 싶어!’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덩보한테서 알 수 없는 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삐루루 뚜루루.”

그때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허허. 너의 이름이 덩보구나!”

할아버지가 등에 새겨진 덩보의 이름을 찾아낸 순간, 덩보는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이발소 담벼락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덩보네 가족을 찾아요. 덩보의 가족을 알고 있다면, 이발소에 알려 주세요.>

하지만 여러 날 동안 덩보를 안다며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이발소에 찾아온 사람은 머리를 깎으러 오는 손님뿐이었다. 그것도 어쩌다가 한 번씩 있었다. 대부분 손님은 이발사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많아서 얼굴에 그물 모양의 주름이 잡혀 있었다.

이발소 손님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덩보를 바라보았다.

얘가 덩보예요?”

, 맞아요. 길가에 두면 위험할 것 같아서 잠깐 데려다 놓은 거예요. 처음엔 장난감인지 로봇인지 헷갈렸는데, 가만히 보니 로봇이더라고요.”

덩보는 손님 중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봐 주기를 바랐다.

잘 좀 생각해 보세요! 저를 본 적 없어요? 저는 춤추는 로봇, 덩보라고요!’

덩보는 일부러 손님 주변을 알짱거렸다. 손님에게 수건을 가져가 주기도 하고,

손님 발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워주기도 하면서. 그럴 때마다 손님들은 덩보가 귀여운 강아지라도 되는 것처럼, 덩보의 등을 살살 쓰다듬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오후에는 덩보가 춤도 추었다.

싹둑싹둑 싸악둑. 그날따라 이발소 할아버지의 가위질 소리가 또렷해서였을까? 덩보에게는 가위 소리가 음악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자 덩보의 어깨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덩보는 춤을 추고 싶어서 좀이 쑤셨다. 그도 그럴 것이 덩보는 이발소에 오기 전까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춤을 추던 로봇이었다.

, 신나게 춤을 추고 싶어!’

덩보는 눈을 꼭 감고서, 춤추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던 덩보가 갑자기 몸을 바르르 떨었다. 덩보는 싹둑싹둑소리에 다리를 통통통통 가뿐하게 굴렀다. ‘싸악둑소리가 들리리 때는 양쪽 팔을 번갈아가며 휘휘휘 저었다.

그 모습을 본 이발소 할아버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덩보야!”

할아버지의 소리에 깜짝 놀란 덩보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아침 햇살처럼 환한 할아버지의 웃음이 덩보의 눈에 쏙 들어왔다.

삘리릭 삘리릭.”

덩보는 할아버지를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춤을 춰버린 게 쑥스러워서였다.

우리 덩보가 이렇게 춤도 잘 추는구나!”

이발소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머리를 깎던 손님이 입을 열었다.

덩실덩실 춤을 잘 춰서, 이름도 덩보인가 봐요!”

 

며칠 후 오후였다. 할아버지는 덩보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어깨 위에 앉혔다.

덩보야, 너는 참 사랑스러운 로봇이란다.”

할아버지 말을 듣고 덩보는 기분이 좋았다. 할아버지 어깨가 폭신한 구름처럼 변해서 하늘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덩보를 데리고 이발소 밖으로 나간 할아버지는 걷기 시작했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어서 걸을 때마다 땀이 흘렀지만, 할아버지는 조금도 쉬지 않았다. 잠시 후 계곡이 나타났다. 계곡에서는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덩보야, 이발소 근처에 이런 데가 있는 줄은 몰랐지?”

삘리릭 삐리리릭.”

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덩보는 사랑스럽고 재주 많은 로봇이에요. 이런 덩보와 헤어진 가족들은 얼마나 슬프겠어요. 그래서 덩보에게 가족을 찾아주고 싶어요.”

그제야 덩보는 알았다. 할아버지가 겨우 몇 명 드나드는 이발소를 나와 사람 많은 계곡을 찾은 이유를 말이다. 덩보는 저는 놀이공원에서 춤추던 로봇이에요!”라고 할아버지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덩보는 할아버지 어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할아버지가 사람들과 말을 하는 동안, 덩보는 계곡 주변을 걸었다. 시원한 바람이 덩보의 안테나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때였다.

, 저건!’

바위가 놓여있는 곳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길게 뻗은 나뭇가지에 가려서 잘 안 보이긴 했지만, 덩보는 그게 무엇인지 금방 알아보았다. 그건 비둘기였다. 덩보가 놀이공원에서 잡고 날았던, 바로 그 비둘기였다.

삐릴리릭 삐삐리리릭!”

덩보가 큰 소리를 내자, 비둘기는 고개를 꾸벅꾸벅 움직였다. 비둘기는 덩보를 기억하는 게 분명했다. 덩보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래, 저 비둘기를 잡고 날아가면, 놀이공원에 가게 될 거야.’

덩보는 무대 위에서 춤추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비둘기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이었을까? 걷다가 말고 딱 멈춰선 덩보가 고개를 저었다.

놀이공원으로 가게 되면, 할아버지를 못 보게 되잖아.’

덩보는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막상 할아버지를 두고 떠나려니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한동안 갈팡질팡하던 덩보는 힘겹게 결정을 내렸다.

우선 놀이공원으로 돌아간 다음, 할아버지를 만나러 와 볼 거야!’

마침내 덩보는 번개처럼 달려들어 비둘기 다리를 잽싸게 잡았다.

됐어!’

이제 비둘기가 날아오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비둘기야! 어서 날아 봐!’

그런데 이번에도 비둘기는 덩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를 않았다. 비둘기는 거칠게 발버둥을 쳤다. 덩보는 비둘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으악, 안 돼!’

덩보는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다.

삐리리 삐리리릭.”

덩보가 뒤로 넘어지면서 바위에 세게 부딪쳤다. ‘꽈다당하는 소리가 계곡을 울리자, 놀란 사람들이 바위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미 덩보는 물살에 휩쓸려 저만치 계곡 아래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얼마 전 할아버지는 이발소 담벼락에 있던 종이를 떼어냈다. 그 후로 지나가던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발소 안을 힐끔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은 덩보가 고장이 나서 고물이 되었다고 했다.

바위에 세게 부딪힌 다음, 계곡물에 떠내려가다가 이리저리 찧었다니까요.”

그때 할아버지가 허겁지겁 달려가, 덩보를 구해냈다던데요?”

그래도 소용이 없었어요. 덩보를 안고서, 할아버지가 얼마나 눈물을 펑펑 흘렸는지 몰라요.”

덩보 소식을 들은 어느 손님이 이발소 앞에서 걸음을 멈춰 섰다. 머리가 새하얀 할아버지 손님이었다. 이발소에 들어간 손님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했다.

덩보 일은 참 안 되었어요.”

손님은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런 손님한테 이발사 할아버지가 다가갔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발사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가 창가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그건 바로 덩보였다.

삘리리릭 삐리릭.”

경쾌한 덩보의 소리가 휘파람 소리처럼 느껴졌다.

덩보를 보고 손님이 깜짝 놀라자, 이발사 할아버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덩보는 저와 가족이 되었답니다.”

손님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덩보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맞구나! 정말 덩보구나!”

사실 덩보는 그전과는 조금 달라지긴 했다. 덩보의 몸에는 찌그러졌다가 펴진 자국이 생겼다.

계곡에서 깊은 상처를 입고 며칠 동안 끙끙 앓던 덩보. 그런 덩보를 할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해 고쳐주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덩보가 누워있는 동안 이런 말도 해주었다.

사랑스러운 우리 덩보야, 얼른 낫거라.”

참 이상했다. 할아버지가 해주는 말을 듣는데, 덩보의 가슴이 찌릿찌릿했다.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는 것처럼 따뜻하기도 했다. 무대 맨 앞에서 박수를 받을 때도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 지금까지 덩보는 이와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덩보는 할아버지와 가족이 되어서, 할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어졌다. 그래서 간절한 눈빛으로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삐리리릭 삘리릭!”

할아버지, 저와 가족이 되어 주세요!’라는 뜻이었지만, 소용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로봇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할아버지가 덩보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마구 끄덕이는 거였다.

그래, 덩보야. 이제 너와 나는 가족인 거야!”

할아버지의 말에 덩보는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와 덩보는 가족이 되었다. 그 뒤로 덩보는 이발소 안에서 멋지게 춤을 추었다. 가끔은 할아버지도 덩보 옆에서 엉거주춤하게 춤을 추었다. 이발소 안에서 둥둥 뜬 것처럼 춤을 추는 덩보와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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