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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네 집
1970년생, 김진수 할아버지 본문
다음 작품은 청소년 '성평등 콘텐츠' 작품 수상작입니다.
1970년생, 김진수 할아버지
- 1 -
김진수 할아버지는 1970년에 태어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김진수 할아버지는 태어나서 7번 강산이 변하는 걸 보았다. 다섯 번째 강산이 변한 뒤로 김진수 할아버지는 머리숱도 자꾸만 줄어들고, 얼굴에 주름도 짙어졌다.
젊었을 적 김진수 할아버지는 ‘사나이 김진수’라고 불렸다. 하지만 김진수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사나이 김진수’라고 불린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같은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 송태순씨가 켜켜이 쌓인 서류 더미를 나르는 걸 보았을 때, 그 무거운 서류 더미를 번쩍 들어준 뒤로, 직장 동료들은 김진수 할아버지를 보고 ‘사나이 김진수’라고 했다.
‘사나이 김진수’라고 불린 다음부터 김진수 할아버지는 사람들 앞에서 센 척을 해왔다. 힘 센 척은 기본이고 마음도 센 척을 했다. 한 번은 사람들 앞에서 괜히 돌덩이를 들고 힘자랑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한 적이 있었는데, ‘사나이 김진수’라서 아픈 내색도 못 했다. 혼자 집에서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끙끙 앓다가도 직장에만 가면 안 아픈 척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 허리가 찌릿찌릿 아픈 걸 참아야 할 때는 아주 잠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이름 앞에 붙은 사나이라는 말을 떼어냈으면 좋겠어!’
하지만 ‘사나이 김진수’는 허리 통증 때문에 찔끔 나온 눈물을 아무도 모르게 닦아내며, 어깨를 당당하게 쫙 펴며, 그 뒤로도 항상 ‘사나이 김진수’로 행동했다.
“현태 아버지, 좀 서둘러요. 현태가 기다리겠는걸요?”
옆 방에서 송태순 할머니의 말이 들려왔다. 송태순 할머니의 말을 듣고, 김진수 할아버지는 이마를 찌푸렸다.
“현태 엄마! 자꾸 그렇게 재촉하면, 현태네 집에 안 갈 거요!”
김진수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게 어디 사나이 김진수가 할 일이야? 아무래도 현태랑 만나기로 했던, 오늘 약속은 취소해야겠어.’
김진수 할아버지는 옷장에서 옷을 꺼내다 말고 멈춰섰다. 그런 다음 성큼성큼 걸어서 송태순 할머니가 있는 방으로 갔다. 김진수 할아버지는 조금만 열려있던 문을 확 밀었다. 김진수 할아버지는, ‘나 오늘 현태네 집에 못 가요!’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아파서 누워있는 송태순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아파서 누워있는데…….’
사실 지난 2주 동안 송태순 할머니는 아들인 현태네 집을 다녀왔었다. 현태네가 사정이 생겨서 현태네 아이 돌봐주는 걸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손주를 돌봐주기로 한 송태순 할머니는, 손주를 돌봐서 몸이 피곤한 것보다 손주를 볼 수 있다는 게 기쁘기만 했었다. 송태순 할머니는 2주가 아니라, 2년이라도 손주를 봐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제 집에 오는 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진수 할아버지가 아픈 송태순 할머니를 현태네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송태순 할머니를 대신해서, 자신이 손주를 봐주겠다고 했다. 그건 김진수 할아버지가 ‘사나이 김진수’처럼 행동하려는 마음 때문에, 무턱대고 내뱉은, 아무 말이었다.
“현태 엄마, 당신 당분간 푹 쉬어요! 현태네는 당신 대신에 내가 갈 테니까.”
김진수 할아버지는 어깨를 쫙 펴고 말했다. 마치 40년 전 직장에서 젊은 송태순씨의 무거운 서류 더미를 번쩍 들어주었을 때처럼. 김진수 할아버지는 송태순 할머니의 무거운 짐을 대신 번쩍 들어주고, 다시 ‘사나이 김진수’가 되려고 했다.
“당신이 손주를 돌보겠다고요?”
“그럼! 그깟 일이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에구, 그런 말 말아요. 손주 보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송태순 할머니가 빤히 쳐다보며 말했을 때, 김진수 할아버지의 마음은 조금 흔들렸다. 손주를 보는 일이 힘들 것 같아서가 아니었고, 그런 일이 사나이다운 일이 아닌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김진수 할아버지는 사나이 김진수인 척을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그 뒤로 김진수 할아버지는, 손주를 돌봐주러 현태네를 갈까, 말까에 대해 하루에도 수백 번이나 마음이 흔들렸지만, 절대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지금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요, 현태 아버지. 당신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불을 어깨까지 덮은 송태순 할머니가 김진수 할아버지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김진수 할아버지는 조용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한 번 해보면 되겠지.”
결국 김진수 할아버지는 옷을 챙겨입고, 현태네 집을 가기 위해 느릿느릿 집을 나섰다.
- 2 -
현태가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고 있는데, 현관 벨이 울렸다. 현태는 서둘러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 어서 오세…….”
현관문 앞에 선 아버지를 보자, 현태는 당황했다.
“엄마가 안 오시고, 어떻게…….”
“너희 엄마가 좀 아파서, 내가 대신 왔다. 내가 엄마 대신 지유 돌봐 주려고.”
김진수 할아버지가 집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네?”
현태는 고개를 몇 번이나 갸우뚱거렸다.
물론 요즘 같은 2040년에 할아버지가 손주의 육아를 도와주는 건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일이다. 20년 전만 해도 성평등 지수가 세계 하위권에 머물렀던 우리나라였다면, 할아버지가 손주의 육아를 도와준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육아는 웬만하면 여자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여자가 되면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육아를 떠안아야 했다.
20년 사이 시대가 많이 변했다. 성평등 지수가 다른 선진국 수준이 된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성별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찾아 나서고 있다.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 해야만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사라진 사회를 만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뒤따랐다. 그래서 2040년의 대한민국은 가정과 직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1970년생 김진수 할아버지는 아직도 2020년 이전의 세상을 살아가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김진수 할아버지는, 남자와 여자가 해야 하는 일에는 구분이 있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사람이었다.
“남자라면 나처럼 사나이답게 직장에 나가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거야. 집안에서 살림하고 육아하는 건 여자의 몫이야. 그건 변할 수가 없고, 변해서도 안 되는 거야”
남자와 여자는 원래부터 타고난 고정 역할이 있다고 믿는 건, 김진수 할아버지한테 종교와도 같아 보였다. 그런 김진수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인 현태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지유를 낳고 나서, 전업 주부가 되겠다며 살림과 육아를 도맡은 현태를 볼 때마다 김진수 할아버지는 억장이 무너졌다.
“지유 엄마는 잘 있느냐?”
김진수 할아버지는 집안을 빙 둘러보며 짧게 물었다.
“이번에 직장에서 또 승진을 했어요. 지유 엄마가 정말 능력이 뛰어나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네가 지유 엄마를 대신해서 육아와 살림을 하는 게…….”
김진수 할아버지의 말을 듣던 현태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제가 지유 엄마의 일을 대신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니에요. 이게 제 일이에요. 전 주부 역할을 해내는 것에 보람과 행복을 느끼니까요.”
현태는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렇게 주부 역할에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면, 계속해서 집안에 틀어박혀서 살림살이나 하고 지유나 볼 것이지, 어디를 나가겠다고 지유를 돌봐 달라는 거냐?”
김진수 할아버지는 말을 끝낸 다음,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아버지! 그러지 않아도 지금 살림하고 육아 더 잘 하려고 교육 받으러 가는 거예요. 딱 두 시간이에요. 지금 지유가 잠이 들었으니까, 잠이 깨면 좀 봐주세요.”
현태는 김진수 할아버지와 말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집을 나섰다. 김진수 할아버지는 현관문을 살며시 열고 나가는 현태의 뒷모습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 3 -
현태가 나간 지 30분이 되었을 때, 지유 방에서 소리가 났다.
“아빠! 빠, 빠, 아빠!”
잠에서 깬 지유가 아빠인 현태를 찾는 소리였다. 김진수 할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지유 방 쪽으로 걸어갔다.
“으흠.”
지유 방 앞에서 김진수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했다.
“…….”
김진수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낯설어서였을까? 갑자기 방에서 들려오던 지유의 말 소리가 뚝 그쳤다.
김진수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방안을 빼꼼 쳐다보았다. 그때 지유는 김진수 할아버지와 눈이 딱 마주쳤다. 놀란 지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으앙! 빠, 빠, 아빠! 어마마! 할마마!”
지유의 울음소리를 들은 김진수 할아버지의 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김진수 할아버지는 무얼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현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지유가 울음을 뚝 그치는 것이었다.
“할바바?”
눈물 범벅이 된 지유는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가며 김진수 할아버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지유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김진수 할아버지의 모습이 비추었다.
“그래, 지유야! 지유가 날 알아봤구나! 내가 네 할아버지란다!”
김진수 할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다음 지유에게 천천히 다가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지유가 울음을 그쳤으니, 이제 좀 편하겠군.’
하지만 그건 김진수 할아버지의 착각이었다. 지유가 할아버지를 알아보았다는 사실이 지유가 할아버지와 함께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았다. 김진수 할아버지와 친숙하지 않았던 지유는 잠자던 자리에서 손으로 이불을 꼭 쥔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김진수 할아버지는 지유를 달래기 위해 애를 썼다.
“지유야, 이제 이리로 와 봐.”
김진수 할아버지는 지유 가까이서 손짓을 했다. 할아버지의 흔들리는 손을 보면서, 지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진수 할아버지가 아무리 지유를 움직이게 하려고 해도, 지유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이 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몰랐어. 그냥 대충 아이랑 같이 있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래서 현태가 교육이라는 걸 받으러 다니는가 보구나’
김진수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유를 돌보는 걸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유를 잘 돌보기 위한, 뾰족한 수도 없었던 김진수 할아버지. 김진수 할아버지는 ‘사나이 김진수’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기분이 나빠진 김진수 할아버지는 지유를 나무라는 말을 했다.
“아니, 지유야! 넌 무슨 여자아이가 이렇게 고집이 세냐? 여자가 좀 고분고분하고 수더분해야지!”
그 말은 들은 지유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아직은 어린 지유가 할아버지가 한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김진수 할아버지의 말투와 행동을 통해 상황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이고, 지유야! 할아버지가 괜한 말을 했구나. 지유야, 할아버지가 미안해.”
김진수 할아버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지유를 보자,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김진수 할아버지는 지유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집안에서 지유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김진수 할아버지가 처음 가지고 온 건, 소꿉놀이 세트였다. 여자 아이라면 소꿉놀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유야, 여기 소꿉놀이 장난감 가지고 놀까?”
그런데 지유는 소꿉놀이 세트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김진수 할아버지는 책장에서 동화책을 골랐다. 머리를 치렁치렁 늘인 여자가 나오는 동화책이었다. 책 속에서 예쁘게 치장을 한 주인공한테 지유가 흥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지유야, 이 언니가 나오는 동화책 주랴?”
이번에도 지유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뒤로도 김진수 할아버지는 여자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 몇 개를 더 가져왔지만, 지유는 울음을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럴수록 김진수 할아버지도 점점 지쳐갔다.
“지유야, 도대체 어떻게 해야 네가 울음을 그치겠니? 그냥 이런 거라도 줄까?”
기진맥진한 김진수 할아버지가 뭔지도 모르는 장난감을 꺼내자, 갑자기 지유가 울음을 뚝 그치는 것이었다.
“이거! 뚜딱 뚝따!”
지유는 그 앞으로 달려가, 뚜껑을 열더니 장난감을 와르르 쏟았다.
“이게 뭐길래, 지유가 이렇게 좋아하니?”
김진수 할아버지는 지유의 손에 들려있는 장난감을 유심히 보았다. 그건 장난감 연장이 들어있는 만들기 도구였다.
‘이럴 수가! 여자 아이들도 이런 걸 좋아하다니!’
그런 장면은 김진수 할아버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내가 평생 지켜왔던 생각과 믿음들이 잘못된 것이었다니!’
김진수 할아버지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남자와 여자가 해야 할 일들은 정해져 있고, 그건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정해진 거라고 믿어왔는데…….’
김진수 할아버지는 넋을 잃은 듯, 지유가 노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지유는 정교한 블록들을 연결하고 장난감 연장을 이용해서 연결 부분을 정교하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할바바!”
부지런하게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가던 지유가 고개를 들더니 김진수 할아버지를 불렀다. 그런 다음 지유는 김진수 할아버지의 손에 블록과 장난감 연장 하나를 들려주었다.
“할바바! 요기로, 요기로!”
김진수 할아버지는 지유가 하는 말과 행동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래, 지유야. 할아버지랑 같이 하자꾸나!”
김진수 할아버지는 지유 가까이로 가서, 지유와 함께 멋진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 4 -
현태네 집에서 나와 돌아오는 내내, 김진수 할아버지는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많았어.’
김진수 할아버지는, 주부 생활을 하는 현태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게 미안했다. 또 주부를 선택하지 않고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있는 며느리를 곱지 않게 본 것도 미안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김진수 할아버지는 같은 직장에서 만나서 결혼하게 된 아내가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게 한 것도 미안해졌다.
‘그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김진수 할아버지는 터덜터덜 느리게 걸었다.
‘에구구, 세월을 다시 되돌려 놓을 수도 없는데 말이야.’
집에 돌아온 김진수 할아버지는 송태순 할머니에게로 갔다.
“현태 아버지, 오늘 고생 많았죠?”
송태순 할머니의 말을 듣고, 김진수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당신은 그걸 한평생 해왔잖아요. 자신의 적성과 능력은 다 접고서, 그냥 우리 가족들을 위해 희생만 해왔잖아요.”
“현태 아버지, 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해요?”
송태순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김진수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김진수 할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내가 한평생을 잘못 살아온 것 같아서……. 사나이 김진수만 외쳐대면서, 당신을 존중하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했던 게 너무 미안하오.”
갑자기 김진수 할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아니. 현태 아버지!”
김진수 할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처음 본 송태순 할머니는 놀라긴 했지만,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현태 아버지, 괜찮아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정말 괜찮아요.”
송태순 할머니는 김진수 할아버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현태 아버지, 앞으로라도 제대로 살아가면 되는 거예요.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잖아요? 우리 나이 70세면 아직도 30년 이상이나 남았어요.”
“그래요, 그러고 보니 당신 말이 맞아요.”
눈물을 닦아 낸 김진수 할아버지는 뭔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태 엄마!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 우리집 살림은 내가 꾸려 볼게요. 당신은 몸도 안 좋은데 당분간 쉬고요. 그리고 당신 몸 다 나으면, 배우고 싶은 거 배우러 다녀 봐요. 당신 말처럼 아직 우리 인생 창창한데, 지금부터라도 다시 배워서 뭔가를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은 능력이 많은 사람이니까…….”
말을 끝낸 다음 1970년생 김진수 할아버지와 송태순 할머니는 서로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서로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 집안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기운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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