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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상징, 유관순 열사

별뜨락 2019. 2. 24. 20:51

유관순 열사가 패션잡지 보그의 표지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점을 찍듯이 그린 유관순 열사의 얼굴과 파랑, 빨강 태극 문양이 선명한 ‘VOGUE’ 글씨가 잡지 위에 있네요.

 


이 사진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작가 이 배씨가 제작한 것인데

 프랑스 파리 조폐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에 출품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던 유관순 열사를 작가의 작품으로 보게 되니, 숭고미가 한층 깊어진 느낌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유관순 열사의 사진은, 바로 다음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유관순 열사가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중에 찍힌 사진입니다

그래서 온갖 고문에 시달리어 온몸이 퉁퉁 부어 있지요. 어떠세요

눈두덩이 뿐만이 아니라 얼굴 전체가 부어 오른 게 보이시나요?

 

아마도 유관순 열사의 실제 모습은 위의 사진보다는 아래 사진과 더욱 가깝지 않았을까요?

 

 

이 사진은 유관순 열사가 이화학당 재학 시절에 찍은 사진이죠

이 사진을 보면 유관순 열사의 총명함과 풋풋함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3. 1절이 다가오는 이 시기인 만큼

이번 포스팅에서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유관순 열사

유관순 열사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열사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열사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저항하다가 의롭게 죽은 사람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주로 맨몸으로 싸우다 죽은 사람에게 열사라는 호칭이 따르게 되지요.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어서 슬프다는 말을 남긴 유관순 열사는,

1919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여하였고,

35일에는 학생단 시위에 참여하여 체포되기도 하는 등

맨몸으로 저항을 한 대표적인 열사입니다.

 

 

3.1운동의 상징, 유관순 열사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죠

이렇게 뜻깊은 해인 2019년의 첫 달, 독립운동가로 유관순 열사가 선정되었습니다.

흔히 유관순 열사는 3.1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19193.1 운동 만세시위에 참여하였고, 학생단 시위에 참여했다가 35일 체포되었으며,

이후 조선총독부가 학교 휴교령을 내지라 고향인 병천(천안)으로 내려와

41일 장말을 이용하여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유관순 열사는 체포되어 5년형 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18살이라는 꽃다운 나이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어린 시절부터 순국까지

1902년 유관순 열사는 지금의 천안에서 3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유관순의 고향은 서울과 충남을 연결하는 교통로였는데, 그래서 개신교를 전파하던 선교사들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교회도 많았고, 유관순 열사 역시 개신교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다가 유관순은, 1916년 선교사의 추천을 받아 교비 유학생으로 이화학당 보통과에 편입하였습니다. 1918년에는 이화학당 보통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고등과에 진학을 했습니다.

그때 이화학당의 분위기는 유관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답니다. 당시 이화학당에서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오후 3시만 되면 모든 수업을 중단하고 조국 독립을 기워하는 기도회, 시국토론회, 시국강연회 등을 개최했는데, 유관순도 그 회원으로 구국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19122일 고종이 서거를 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진해서 상복을 입고 휴교에 들어갔으며 228일에는 전교생이 만세를 부르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이 결의에 따라 이화학당 학생들은 파고다 공원에서 벌어진 3.1 만세 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등 시위 행렬에 합류를 한 것이죠.

이후 35일 학생 연합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화학당 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때 유관순도 만세를 부르다가 일본 경찰에게 잡혔으나 곧 석방이 되었습니다.

그 뒤 유관순은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유관순은 부친과 마을 어른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내놓으며, 서울에서의 만세 운동을 이야기해줍니다. 그러면서 병천 시장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해내고, 마침내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킵니다.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형무소에 수감 당했습니다. 이때 유관순의 부모님도 목숨을 잃고, 유관순은 주도자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유관순의 저항 정신은 수감이 된 이후에도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유관순은 192031일 오후 2시를 기해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갖고, 옥중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한 것입니다. 이때 3천여 명의 수감자들이 부르던 만세 소리가 밖으로 퍼져나갔고, 이 소리를 듣고 형무소 주위로 인파가 몰려들어 통행이 마비되었으며, 급기야 경찰 기마대까지 출동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유관순은 다른 애국지사와 함께 심한 고문을 당했고, 끝내 18세의 나이로 순국을 하게 되었죠.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간 유관순 열사. 그녀를 떠올리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유관순 기념관

유관순 열사에 대해 좀 더 많은 걸 알고, 체험해보시고 싶으시다면,

유관순 기념관을 방문하는 것도 좋겠네요.

유관순 기념관은 서울, 천안 두 군데에 있답니다.

유관순 열사의 사진이나 유품 전시된 걸 보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을 방문해 보시고요.

관련된 체험 활동을 해보시고 싶은 분들께는 천안 방문을 추천해 드립니다.

 

 (서울) 유관순 기념관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430-1 유관순기념관


 

유관순 열사를 기념하기 위해 유관순 기념관이 서울에 건립되었습니다.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에 건립한 기념관입니다

2000여개의 좌석, 넓은 무대, 조명, 음향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예배, 음악회, 연극 발표회 등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천안에 위치한 유관순 기념관

천안 유관순열사기념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길 38

 

유관순 열사에 대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벽관 체험 코너와 태극기를 직접 찍어보고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체험공간을 마련되어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341일 개관을 한 곳이랍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3.1절이네요.

올해는 특히 3.1운동 100주년이 된 만큼,

3.1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나라사랑을 몸소 실천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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