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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네 집
초등학생을 위한 동화 본문
안녕하세요, '이카네 집'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동화를 준비했습니다.
'이카네 집'에서 직접 창작한 동화이고요,
창작자의 노력과 정성을 생각하시어, 표절이나 퍼가기는 삼가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그림 그려주는 아이
누군가 책상 위에다 낙서를 또 했다. 나는 책가방을 내려놓고 지우개를 꺼냈다. 지우개로 책상을 박박 문지르니까 ‘유나네 엄마는 어디 있냐?’는 글자들이 지우개 가루에 차례로 뒤엉킨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래, 우리 엄마 없는 거 아직도 몰랐냐?”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누가 그랬는지 나한테 걸리기만 해봐!”
내 목소리가 쩡쩡거리며 울리자, 갑자기 누군가가 고개를 퍽 떨구었다. 승아였다.
‘쟤는 왜 저러는 거야? 내 목소리가 사나웠나?’
승아처럼 얌전한 아이가 내 목소리에 놀랐을 걸 생각하니,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음. 나한테 이런 낙서 가지고 놀려봤자 소용없는 거 알지?”
나는 입 꼬리를 올려 상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럼, 오늘은 누구 그림을 그려줄까?”
내 말이 끝나자 아이들 몇 명이 나한테로 달려왔다.
“유나야! 우리 집에 고양이 있잖아. 별이 그림 하나 부탁해.”
“유나야, 내가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 알지?”
“어, 나는…….”
우물거리는 친구한테는 내가 먼저 걸었다.
“네가 좋아하는 고래 그림 그려줄게.”
가끔 어떤 아이들은 묻는다. 만날 친구들에게 그림 그려주는 게 지겹지도 않으냐고.
그건 나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나는 그림을 억지로 그리는 게 아니다. 나는 그림 그릴 때가 가장 좋다. 내 그림을 보고 기뻐하는 친구들을 보면 가슴 속에 따뜻한 구름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 시험을 망친 날도 키득거릴 수 있다. 나한테는 그림이 있으니까 엄마가 없어도 까르르 웃을 수 있는 거다.
춥고 바람까지 부는 아침이다. 나는 아빠가 씌워준 귀마개를 빼냈다.
‘귀 끝이 떨어져나간다 해도,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걸 하고 학교에 갈 수는 없지.’
아빠의 사랑과 정성만 마음에 담기로 하고, 귀마개는 주머니에 넣었다.
“아, 추워.”
차가운 바람이 스치자 입이 덜덜 떨렸다. 이럴 땐 빨리 걷거나 뛰어야 몸이 따뜻해진다.
나는 숨이 헉헉거릴 정도로 겅충겅충 뛰기 시작했다.
교문 앞에서는 승아를 보았다. 승아는 어깨를 잔뜩 웅크려서 몸이 기울어져 있었다.
나는 큰 소리로 승아를 불렀다.
“승아야!”
내가 친하지도 않은데 승아를 부른 이유는, 지난 번 일 때문이다. 내가 지른 소리에 놀라던 승아가 생각나서였다.
승아는 한 발 뒤로 물러서더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왜?”
나는 괜히 머쓱해서 아무 말이나 불쑥 내뱉었다.
“너는 어떤 그림 좋아해?”
생각해보니 우리는 서로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거의 없다. 우리 둘이 워낙 다르다보니까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천방지축에다가 공부를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승아는 차분하고 공부도 잘 한다.
한참 동안 머뭇거리던 승아는 새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그림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어, 그렇구나.”
승아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입이 삐죽 나왔다. 내가 그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나한테 저런 말을 한다는 게 속상했다. 뭐, 따지고 보면 그림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승아의 마음이긴 하지만.
나는 기분이 안 좋아서 고개를 딴 데로 슬쩍 돌렸다. 그때 승아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특히 이렇게 알록달록한 그림은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나는 승아가 꺼낸 걸 힐끔 쳐다보다 말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럴 수가! 승아는 내 것과 똑같은 귀마개를 가지고 있었다.
“푸하하, 그렇게 촌스러운 건 나도 안 좋아해!”
나는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귀마개를 꺼내보였다.
“승아야, 이거 좀 봐.”
내 귀마개를 보자 승아가 킥 웃었다.
승아가 웃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승아한테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승아와 나의 웃음이 겨울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오르고 나서였다. 멀리서 성진이가 보였다. 성진이는 바람에 달그랑거리며 굴러오는 빈 깡통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너희 둘 언제 이렇게 친해졌냐?”
성진이는 까불면서 말했다.
“승아야, 너도 유나한테 그림 그려달라고 했냐?”
“아, 아니.”
승아의 얼굴이 벌게졌다.
‘어? 왜 그러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승아는 성큼성큼 걸어서 나를 앞질러 갔고, 나는 점점 멀어지는 승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승아가 저만치 떨어지고 나서 귀마개를 다시 주머니에 꾹 넣었다.
터벅터벅 걸어서 교실로 들어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렇게나 짜놓은 물감이 뒤범벅되어 마음속을 물들이는 것 같았다.
3교시가 끝나기 전에는 성진이가 조퇴를 했다. 전국어린이 미술대회에 출전한다고 했다. 나도 미술대회에 같은 데 나가서 하루 종일 그림이나 실컷 그리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처럼 학교에서 찜찜한 일이 반복될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책상 위의 낙서, 낙서 지운 뒤 버럭 소리 지르는 나, 내 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팍 숙이는 승아. 아, 지겹기도 하고 짜증도 난다. 하지만 나는 미술대회 같은 게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도 모른다.
성진이가 수업 중간에 나가니까 교실이 잠깐 어수선해졌다.
“참, 선생님이 너희에게 할 말이 있어.”
선생님의 얼굴에 어둠이 깔리자, 교실이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이번 학년을 즐겁게 마무리하기를 바랐는데.”
선생님은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 반 아이들은 다 안다.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한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일명 쫙쫙 마음 펼치기 123. 한 시간 동안 선생님과 상담, 두 시간 동안 친구들 위해 봉사, 세 시간 동안 인성 명언 외우기.
“남에게 상처 주는 말과 글이 아니라, 남에게 행복을 주는 말과 글을 써야 하는 거야.”
선생님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나 사건?”
“책상 낙서.”
“유나 엄마 이야기.”
아이들이 소곤거리며 주고받는 소리가 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소리를 빽 지르는 게 차라리 낫겠다. 아니면 모른 척 하고 깔깔대고 웃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렇게 꼼짝 않고 다른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선생님은 아이들을 찬찬히 둘러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책상 위에 낙서가 또 발견되면.”
선생님의 소리가 날카롭게 날아갔다.
그때였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승아 책상에서 귀마개가 떨어졌다. 승아는 부랴부랴 바닥에 떨어진 귀마개를 주웠다.
‘피, 기껏 저 정도 소리에 놀라서, 별 걸 다 떨어뜨리네.’
나는 승아를 흘끔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책상 위에 낙서가 또 발견되면, 그땐 다 같이, ‘쫙쫙 마음 펼치기 123’활동을 한다!”
선생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의 한숨 소리와 함께 수업 마치는 종이 울렸다.
며칠 동안 추위가 누그러지고 낙서도 안 보였다.
‘얼른 가서 애들이 부탁한 그림 그려야지.’
나는 급식을 먹자마자 계단을 급하게 올라갔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그림 생각뿐이었다. 휴, 드디어 다 와서는 교실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성진이가 승아 책상 앞에 있었다. 교실에 혼자 있던 성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빨개졌다.
“너, 승아 책상에다가 뭐 한 거야?”
나는 성진이를 향해 큰 소리를 내질렀다. 그때 아이들 몇 명이 교실로 들어왔다. 그 사이에 승아도 있었다. 성진이는 꼭 쥐고 있던 연필을 팽개치고서, 밖으로 뛰어 나갔다.
나는 승아 책상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 이럴 수가!’
승아 책상에는 낙서가 있었다. 그걸 본 내 가슴은 철렁하고 주저앉았다.
‘승아는 아빠 없는 아이.’
어느새 승아 책상으로 몰려든 아이들도 낙서를 보았다.
“그것 봐. 성진이가 그림 잘 그리는 걸 샘내서 유나 책상에 낙서해 왔던 거잖아.”
“그러다가 들킬 것 같으니까, 승아 책상에도 낙서를 한 거지.”
“그런데 정말 승아네 아빠 없어?”
승아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자기 자리에 와 앉았다. 고개를 숙인 승아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승아야,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승아 책상의 낙서를 지우기 시작했다. 책상을 있는 힘껏 박박 문질렀다. 글자들은 얼마나 진하게 눌러 썼는지,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괜찮아. 내가 할게.”
승아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같이 해.”
내가 말하자 승아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다음 날 우리 반 아이들은 ‘쫙쫙 마음 펼치기 123’ 활동을 했다. 선생님은 평소에 고맙거나 미안했던 친구에게 줄 그림 편지를 만들라고 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냥 그림 편지만 만들면 되니까.”
앞에서 누군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우리 이야기이지. 성진이는 원래 하는 활동 다 해야 돼.”
“게다가 점심시간마다 친구들 그림 그려주는 봉사도 한다던데?”
“맞아. 나도 들었어. 아까 유나하고 승아한테 그림 편지 주면서 그랬어.”
“웬일이냐? 자기 그림밖에 그릴 줄 모르던 성진이가.”
나는 아이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림 편지를 만들었다. 승아에게 줄 거였다.
하얀 도화지 위에는 승아와 내가 똑같은 귀마개를 끼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물론 우리가 싫어하는 무늬는 귀마개에서 뺐다.
‘더 그려 넣을 건 없나?’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승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나야!”
고개를 들어보니 승아가 앞에 있었다.
“이거 너한테 주는 거야.”
승아는 그림 편지를 내밀었다. 승아가 준 그림 편지가 따뜻했다. 어쩐지 승아와 나에게 봄이 성큼 다가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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