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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네 집
KB창작동화제 수상작 -고학년 동화 본문
안녕하세요. '이카네 집'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용 동화를 소개할게요.
KB 창작동화제 입선 수상했던 작품인데요,
'이카네 집'을 방문한 분들께서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 포스팅 글로 올립니다.
창작자의 열정과 노력을 생각하시어 퍼가기나 표절은 절대 하지 말아 주세요.
냄새를 파는 가게
‘찾았다! 냄새를 파는 가게!’
지웅이는 문을 살짝 열고 가게를 살폈습니다. 가게 안은 조용했습니다. 천장까지 닿는 진열장에는 수많은 색깔의 유리병이 있습니다.
“어서 와요.”
주인아저씨가 지웅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여기에 앉아서, 주문하고 싶은 추억을 생각해봐요.”
지웅이는 엉겁결에 자리에 앉으면서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주문한 냄새를 맡으면, 진짜로 추억이 떠올라요?”
아저씨는 고개를 쑥 내밀며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죠. 냄새는 과거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답니다. 자, 주문할 추억은요?”
지웅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때 여섯 살 때의 일이 어렴풋하게 떠올랐습니다.
“아빠랑 같이 단풍나무 길 걷던 거요.”
“어렵지 않은 주문이군요.”
지웅이 말을 듣고 아저씨는 ‘단풍나무’라고 쓰여진 병을 진열장에서 꺼냈습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지웅이는 탁자 위에 놓인 병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눈이 스르륵 감기면서 추억의 한 장면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갑자기 누군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아빠였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지웅이의 아빠입니다. 아빠는 울긋불긋 단풍 나뭇잎이 깔린 길을 걸어왔습니다.
“아빠!”
지웅이는 아빠를 힘껏 부르면서 아빠의 품을 파고들었습니다. 아빠는 바스락거리는 단풍 나뭇잎을 뒤적이더니, 작고 예쁜 단풍 나뭇잎 하나를 골라 주었습니다. 모든 게 진짜 같았습니다.
그러나 단풍 나뭇잎 냄새가 점점 희미해지자, 모든 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저씨는 어깨를 흔들어 지웅이를 깨웠습니다.
“추억의 시간은 즐거우셨나요?”
아저씨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지웅이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가게에서 나와 보니 저녁놀이 하늘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빠.”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지웅이의 얼굴에 저녁놀이 비칩니다.
“아빠도 알아요? 나한테 아빠가 또 생겼어요.”
지웅이의 앙상한 어깨가 들썩였습니다.
“할아버지도 알고 있어요. 아빠의 아빠 말이에요.”
지웅이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터벅터벅 걸어서 골목 모퉁이를 돌아나가는 지웅이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집니다.
드디어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지웅이가 할아버지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입니다.
“지웅아! 놀이터까지 데려다 줄게.”
새로 생긴 아빠는 급하게 신발을 신으며 지웅이를 붙잡았습니다.
“괜찮아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지웅이가 잡은 손을 슬며시 뿌리쳤습니다.
새로 생긴 아빠는 눈을 끔벅이면서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지웅이는 새로 생긴 아빠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땐 좀 가만히 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을 나온 지웅이는 가슴이 마구 뛸 정도로 달렸습니다.
‘오늘은 할아버지랑 무얼 할까? 지난번처럼 박물관에 가볼까? 아니면…….’
지웅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습니다. 할아버지와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놀이터에 도착한 지웅이는 할아버지를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늦지?’
지웅이는 두리번거리면서 할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어, 이상하다.’
지금까지 할아버지는 약속에 늦은 적이 없습니다. 한 번 약속을 하면 어김없이 지키는 할아버지였으니까요.
‘혹시 나한테 아빠가 새로 생겨서, 안 오는 걸까?’
마음이 불안해진 지웅이는 놀이터 주위를 몇 번이나 맴돌았는지 모릅니다.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지웅이는 오후 내내 할아버지를 기다렸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지쳐버린 지웅이는 놀이터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았습니다.
‘맞아, 할아버지는 이제 나를 만나러 오지 않을 거야’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발길도 뜸해졌습니다. 지웅이는 옷도 털지 않은 채 일어나, 시소에 앉았습니다. 지웅이의 가슴 한 귀퉁이에서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지웅이가 울음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고 있을 때였습니다.
“지웅아! ”
할아버지였습니다. 지웅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다 말고, 입을 삐쭉 내밀었습니다.
“우리 지웅이 많이 기다렸지?”
할아버지는 시소를 탄 지웅이의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참 이상도 하지. 늘 왔던 길인데 말이야.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헤맸는지 몰라.”
할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습니다.
“거짓말!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어!”
지웅이는 시소를 세게 내렸습니다. 그러자 쾅 소리와 함께 할아버지 쪽으로 시소가 기울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참을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지웅아, 할아버지가 이젠 늙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나 보다.”
“할아버지, 정말이야?”
할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할아버지! 다음번에는 나랑 같이 추억을 되살려주는 가게에 가자”
“그런 데가 다 있어?”
“응, 그러니까 다음에 나랑 꼭 만나야 돼!”
“그래, 그래. 지웅이 만나서 거기에 꼭 가봐야지.”
할아버지는 지웅이를 향해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냄새를 파는 가게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방에서 나온 지웅이는 새로 생긴 아빠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지웅아! 조심해서 다녀와!”
지웅이는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서 뒤돌아섰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지웅아! 나가지 마!”
허둥지둥 달려온 엄마가 지웅이를 막아서며 말했습니다.
“엄마, 왜?”
지웅이는 당황해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습니다.
“그게…….”
“엄마, 할아버지랑 꼭 만나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지웅이의 목소리에는 서운한 마음이 묻어났습니다. 지웅이는 자기가 할아버지랑 만나는 걸 엄마가 싫어하게 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새로 생긴 아빠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엄마! 나 할아버지 만나고 올 거야!”
지웅이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지웅아! 좀 전에 고모한테 전화 왔었어. 할아버지 못 오신다고.”
엄마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왜? 왜 못 오시는데?”
지웅이는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엄마는 지웅이와 새로 생긴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대. 그래서 혼자서는 여기도 못 찾아오신대.”
지웅이는 믿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그렇지만 지웅이는 그게 무얼 말하는지 알았습니다. 그건 이제 할아버지의 머릿속에 있는 추억들이 하나씩 사라진다는 겁니다. 지웅이는 할아버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며칠 뒤였습니다. 새로 생긴 아빠는 지웅이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습니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나가자 지웅이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지웅이가 도착한 곳은 냄새를 파는 가게였습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지웅이는 큰 소리로 할아버지를 부르며 달려갔습니다.
“지웅아!”
지웅이는 할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지웅이와 할아버지가 만나는 걸 보고, 주인아저씨는 진열장 깊숙한 곳에서 병을 꺼냈습니다. 병 안에는 알록달록한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여기 할아버지께서 주문하신 추억의 냄새가 나왔습니다.”
뚜껑을 열자 코끝이 조금 따가웠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할아버지의 사라져가는 기억을 일으키려면 강력한 냄새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지웅이와 할아버지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오고, 둘은 흐릿했던 추억 속으로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제일 먼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세상에, 우리 지웅이가 태어났구나!”
지웅이의 꼬물꼬물한 손이 할아버지의 얼굴에 닿았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그 다음으로 걸음마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색연필을 잡고 있는 지웅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때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방 한 구석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의 몸은 한동안 가늘게 떨렸습니다. 할아버지는 가슴이 툭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쓰라립니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돼.”
갑자기 벌떡 일어선 할아버지는, 지웅이한테 달려갔습니다.
“지웅아.”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는 지웅이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지웅아, 아빠는 하늘나라에서 지웅이를 내려다보고 있을 거야.”
할아버지는 조그만 지웅이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습니다.
“지웅아, 아빠 대신 할아버지가 곁에 있어 줄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따뜻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습니다. 지웅이와 할아버지는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눈을 뜨고 지웅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지웅아!”
지웅이는 할아버지한테 가까이 갔습니다.
“혹시 할아버지가 깜박깜박해서 지웅이를 못 알아보게 되더라도…….”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잠깐 떨렸습니다.
“여기에는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다 남아 있단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습니다.
지웅이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여보게.”
할아버지는 새로 생긴 아빠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네, 어르신.”
“앞으로 우리 지웅이 곁에 있어줄 거지?”
“그럼요. 걱정 마세요.”
새로 생긴 아빠는 지웅이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지웅이는 슬그머니 두 사람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지웅이는 익숙한 냄새와 새로운 냄새가 맡았습니다. 코를 쨍긋거리는 지웅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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