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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설 – 이인직, 안국선, 이해조

별뜨락 2019. 3. 21. 09:31

신소설이란 무엇일까요?

신소설 작품들을 지금에 와서 보면, 전혀 새로운 것이 없는 소설입니다. 그렇지만 신소설이 생겨난 1900년대 개화기의 시점에서 본다면, 사정은 다릅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국문 소설은, 운문체 문장이나 한문 직역투의 문장이 구사되었답니다. 신소설은 이러한 구소설과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겠다고 야심차게 이름을 붙인 서사문학의 종류였던 것입니다.

 

신소설 의의

신소설이라는 명칭은 이인직의 혈의 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요, 신소설은 고대소설에서 벗어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측면이 있습니다. 소설의 구조, 문체나 묘사,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고대소설의 한계를 상당히 극복해낸 것이죠. 작품의 세계도 이전의 구소설들과는 달리, 허무맹랑하거나 비현실적이지 않고, 당대 사회의 현실에 두었습니다. 특히 인물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선악의 유형이 뚜렷한 고대소설과는 대비됩니다. 비교적 개성적인 인물들이 사실적인 세계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죠.

 

신소설의 내용

대부분의 신소설은 개화기의 시대정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개화사상, 자주독립 의지,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 강조, 구습(봉건적인 사회 체제 등) 비판, 미신타파와 합리적인 삶에 대한 인식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소설은 점차 통속적인 내용으로 변했습니다. 초기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과 적극적인 계몽정신이 퇴색하고, 이야기 자체의 흥미만 추구하게 된 것이죠.

 

신소설의 한계

새로운’, ‘’, ‘new’, ‘neo’ 등의 글자만 갖다 붙인다고 해서 정말로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지요. 신소설도 마찬가지랍니다. 신소설이 소설의 구조, 문체, 묘사 등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고대소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요? 그런 분들을 위해 몇몇 신소설 작품을 직접 인용해 보겠습니다.

 

일청전쟁의 총소리는 평양 일경이 떠나가는 듯하더니, 그 총소리가 그치매 사람의 자취는 끊어지고 산과 들에 비린 티끌 뿐이라.”-이인직, 혈의누-

 

대저 우리들이 거주하여 사는 이 세상은 당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극히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조화로 만드신 것이라.” -안국선, 금수회의록-

 

남자들도 응당 귀도 있고 눈도 있으리니, 타국 남자와 같이 학문을 힘쓰려니와 우리 여자도 타국 여자와 같이 지식이 있어야 우리 대한 삼천리 강토도 보전하고, 우리 여자 누백 년 금수도 면하리니, 지식을 넓히려면 하필 어렵고 어려운 십 년 이십 년 배워도 천치를 면치 못할 학문이 쓸데 있소?” -이해조, 자유종-

 

작품을 직접 보고나니까, 좀 아시겠죠? 소설의 언어도 언문일치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다보니, 읽고 해석하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학자들은 신소설을 진짜 신소설로 평가하지 않고, 고대소설과 근대소설의 중간단계에 있는 장르로 여긴답니다.

 

대표적인 신소설의 작가

이인직

<만세보>의 주필이었던 이인직은 자신의 소설 혈의 누<만세보>에 발표했는데, 이게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이었습니다.

()의 누()’의는말 그대로 피눈물을 뜻하는데요옥련이라는 여성의 피눈물 나는 인생역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옥련을 통해 결혼에 대한 기성 관념을 비판하고 자유연애론을 역설하고 있는 신소설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의 창작자, 이인직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1862년에 태어난 이인직은 1900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의 동경 정치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귀국 후 일진회의 기관지 국민신보를 거쳐 만세보주필을 역임했는데, 이때 혈의 누’, ‘귀의 성을 연재하여 본격적인 신소설 시대를 열었습니다.

 

안국선

1878년 태어난 안국선은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의 동경전문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1899년 귀국 후 역모 사건에 연류되어 구금을 당했습니다. 1904년에는 종신유형을 언도받아 진도에 유배를 가기도 했지요. 마침내 1906년 유배에서 풀려나, 돈명의숙 교사로 재직하다가 1907년에는 다시 관직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와중에 1908금수회의록을 발간했는데, ‘금수회의록은 우화소설이면서 시사 토론 형식의 소설로,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답니다.

 

이해조

1869년에 태어난 이해조는 인조의 셋째아들이었던 인평대군이 십대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해조는 진사시험에 합격했으나 신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이해조는 1907년 이종일, 양기탁, 이준, 주시경 등과 함께 애국 계몽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해조이 대표적인 작품은, ‘자유종’, ‘구마검등입니다.

 

이렇게 해서 신소설의 특징과 대표적인 신소설 작가 3인을 알아보았는데요,

한마디로 신소설은, 본격적인 근대소설이 등장하기 전의 과도기적 형태라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소설은 아니었지만, 근대소설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죠. 어정쩡하지만, 구세계와 신세계 사이에 놓였던 다리가 바로 신소설이었던 셈입니다.

 

오늘도 활기차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이카네 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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