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네 집

정지용 시모음 – 정지용의 삶과 정지용의 시 본문

이카네 문화산책

정지용 시모음 – 정지용의 삶과 정지용의 시

별뜨락 2019. 3. 25. 23:15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으로 시작되는 노래, ‘향수를 아시나요? 우리에게 익숙한 이 노래는, 바로 정지용의 향수에다가 곡을 붙인 것이랍니다. 지금이야 정지용의 여러 작품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한때 정지용의 작품은 제대로 평가를 못 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출간조차 되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을지, 궁금하시죠?

이번 포스팅에서는 정지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몰랐던 정지용의 삶을 되짚어보겠습니다. 그런 다음 정지용의 시를 감상하신다면, 시 속에 감추어진 내적 의미를 더욱 잘 파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정지용은 실개천이 지줄대는옥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12세 때에 결혼을 한 정지용은, 옥천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정지용은 휘문고보 시절부터 학예부장, 편집위원 등을 지내며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발휘했지요. 그러다가 20대 초반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샤대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 이후 정지용은 국내로 돌아와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 가톨릭 청년편집고문, <시와 소설> 간행 일 등을 맡았습니다.

해방 후에도 정지용은 활발하게 활동을 하며,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을 함과 동시에 시, 수필, 평론을 발표했지만,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정지용의 작품 활동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정지용이 납북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정지용의 납북은 자진 월북으로 오해를 받아, 정지용의 문학은 꼭꼭 감추어졌답니다. 시대적 상황이 어지러웠던 그때 당시, 정지용은 이름조차 거론될 수 없는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정지용의 작품은 해금이 되었고, 그제야 비로서 정지용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게 되었답니다.

 

정지용 시는 어떤 특징을 나타내고 있을까요?

정지용 시는 무절제한 감정을 남발하지 않고,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불필요한 감정과 언어를 배제하고, 사물의 핵심을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이미지가 담긴 사진이나 그림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답니다.

다음으로 소개된 정지용의 작품을 통해, 정지용의 내면세계를 알아내면서, 이미지즘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 파악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유리창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삼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러 갔구나!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점잔도 하다마는

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 편인 말아,

검정콩 푸렁콩을 주마.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해바라기 씨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롱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감고 한밤 자고 나면

이실이 나려와 가치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시약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깩! 지르고 간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고리 고놈이다.

 

 별똥

  

별똥 떠러진 곳,

 

마음해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오.

 

 

 

눈 머금은 구름 새로

흰달이 흐르고,

 

처마에 서린 탱자나무가 흐르고,

 

외로운 촛불이, 물새의 보름자리가 흐르고...

 

표범 껍질에 호젓하이 쌓이여

나는 이밤, 적막한 홍수>를 누어 건늬다.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 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실로 잇는 듯 가깝기도 하고,

 

잠실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 듯, 소사나 듯,

불리울 듯, 맞어드릴 듯,

 

문득, 령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일는 회한에 피여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우에 손을 념이다.

 

 종달새

 

삼동내-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웨저리 놀려 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웨저리 놀려 대누.

 

해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

모래톱에서 나홀로 놀자.

 

바다 8

 

흰 구름

피여 오르오,

내음새 조흔 바람

하나 찻소,

미억이 휙지고

소라가 살오르고

아아, 생강집 가치

맛드른 바다,

이제

칼날가튼 상어를 본 우리는

뱃머리로 달려나갔소,

구녕뚫린 붉은 돗폭 퍼덕이오,

힘은 모조리 팔에!

창ㅅ그튼 ㅅ곡 바로!

 

 바다


..... 소리치며 달려 가니

..... 연달어서 몰아 온다.

 

간 밤에 잠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플어졌다.

 

철석, 처얼석, 철석, 처얼석, 철석,

제비 날어 들 듯 물결 새이새이로 춤을 추어.

 

 채플린 흉내 

 

채플린을 흉내내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다.

모두가 와르르 웃었다.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가지 않아

엉덩이가 허전해졌다.

채플린은 싫어!

화려한 춤이야말로

슬픈 체념.

채플린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온 새


새삼나무 싹이 튼 담우에

산에서 온 새가 울음 운다.

 

산엣 새는 파랑치마 입고,

산엣 새는 빨강모자 쓰고,

 

눈에 아름 보고 지고,

발 벗고 간 누의 보고 지고,

 

따순 봄날 이른 아침부터

산에서 온 새가 울음 운다.

 

산넘어 저쪽 

 

산넘어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꾸기 영우에서

한나잘 울음운다.

 

산넘어 저쪽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 맞어 쩌 르 렁!

 

산넘어 저쪽에는

누가 사나?

 

늘 오던 바늘장수도

이봄 들며 아니 뵈네.

 

 무어래요.

 

한길로만 오시다

한고개 넘어 우리집.

앞문으로 오시지는 말고

뒷동산 새잇길로 오십쇼.

늦은 봄날

복사꽃 연분홍 이슬비가 나리시거든

뒷동산 새잇길로 오십쇼.

바람 피해 오시는 이처럼 들레시면

누가 무어래요?

 

 이른 봄 아침


귀에 설은 새소리가 새여 들어와

참한 은시계로 자근자근 얻어맞은 듯,

마음이 이일 저일 보살필 일로 갈러져,

수은방울처럼 동글 동글 나동그라저,

춥기는 하고 진정 일어나기 싫어라.

 

쥐나 한 마리 훔켜 잡을 듯이

미닫이를 살포-시 열어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 으론 오호! 치워라.

 

마른 새삼넝쿨 새이 새이로

빠알간 산새새끼가 물렛북 드나들 듯.

 

새새끼 와도 언어수작을 능히 할가 싶어라.

날카롭고도 보드라운 마음씨가 파다거리여.

새새끼와 내가 하는 에스페란토는 회파람이라.

새새끼야, 한종일 날어가지 말고 울어나 다오,

오늘 아침에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워라.

 

산봉오리- 저쪽으로 몰린 푸로우피일-

페랑이꽃 빛으로 불그레 하다,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하게

깎어 세운 대리석 기둥 인 듯,

간뎅이 같은 해가 익을거리는

아침 하늘을 일심으로 떠바치고 섰다,

봄바람이 허리띠처럼 휘이 감돌아서서

사알랑 사알랑 날러 오노니,

새새끼도 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


산엣 색씨 들녁 사내


산엣 새는 산으로,

들녁 새는 들로,

산엣 색씨 잡으러

산에 가세.


작은 재를 넘어 서서,

큰 봉엘 올라 서서,


호-이

호-이


산엣 색씨 날래기가

표범 같다.


치달려 다러나는

산엣 색씨,

활을 쏘아 잡었읍나?


아아니다,

들녁 사내 잡은 손은

차아 못 놓더라.


산엣 색씨,

들녁 쌀을 먹였더니

산엣 말을 잊었읍데.


들녁 마당에

밤이 들어,


활 활 타오르는 화투불 넘어

넘어다 보면-


들녁 사내 선우슴 소리,

산엣 색씨 

얼골 와락 붉었더라.


삼월 삼질 날 


중, 중, 때때 중,

우리 애기 까까 머리.


삼월 삼질 날,

질나라비, 훨, 훨,

제비 새끼, 훨, 훨,


쑥 뜯어다가

개피 떡 만들어.

호, 호, 잠들여 놓고

냥, 냥, 잘도 먹었다.


중, 중, 때때 중,

우리 애기 상제로 사갑소.


딸레 


딸레와 쪼그만 아주머니,

앵도 나무 밑에서

우리는 늘 셋동무.


딸레는 잘못 하다

눈이 멀어 나갔네.


눈먼 딸레 찾으러 갔다 오니,

쬐그만 아주머니 마자

누가 다려 갔네.


방울 혼자 흔들다

나는 싫여 울었다.


 


부헝이 울든 밤

누나의 이야기-


파랑병을 깨치면

금시 파랑바다.


빨강병을 깨치면

금시 빨강 바다.


뻐꾸기 울든 날

누나 시집 갔네-


파랑병 깨트려

하늘 혼자 보고,


빨강병을 깨트려

하늘 혼자 보고,


홍시


어적게도 홍시 하나.

오늘에도 홍시 하나.


까마귀야. 까마귀야.

우리 남게 웨 앉었나.


우리 옵바 오시걸랑.

맛뵐라구 남겨 뒀다.


후락 딱 딱

훠이 훠이!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담뱃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이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믄 날도 

비가 오시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