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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소나기, 풋풋한 사랑이 주는 여운 본문
황순원의 소나기는 알퐁스 도데의 ‘별’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한편의 서정시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노래한다는 점이 두 작품의 공통점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이렇듯 우리들은 저마다의 마음속에 아름다움과 순수함에 대한 로망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나기는 1952년에 지어진 작품으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황순원의 대표작품입니다. 또한 한국 단편소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작품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나기는 작품이 발표된 이후로 지금까지 드라마, 영화, 광고, 노래가 되어 끊임없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산골 마을에 사는 소년입니다. 경기도 양평에는 황순원 소나기마을이 있는데, 작품의 배경을 생생하게 체험해보고 싶다면, 이곳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소설의 도입부는 소년이 서울에서 살다가 온 윤초시네 증손녀딸을 지켜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윤초시네 증손녀는 며칠째 징검다리 이에 앉아 물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초시네 증손녀는 하얀 조약돌을 집어던지며 ‘이 바보’라고 소리친 다음 갈대밭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만약 소년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동네에 낯선 아이가 나타나서 만날 징검다리에서 장난을 치더니, 어느 날 여러분에게 조약돌을 던지고 ‘바보’라고 합니다. 만약 저였다면 이랬을 것 같습니다.
‘뭐, 저런 아이가 다 있어. 제 정신이야? 이상한 아이야. 다음부터는 피해서 다녀야겠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소녀가 던진 조약돌을 발로 뻥 차버렸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착하고 순진한 소년은 다음날도 개울가로 나가 주변을 기웃거리며 소녀를 찾습니다. 그러다가 소녀가 안 보이자 허전함을 느낍니다. 그 뒤로 소년은 소녀가 던진 조약돌은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자, 이제 눈치를 채셨습니까? 소년은 왜 소녀를 찾고, 소녀가 던진 조약돌을 만지작거렸던 것일까요? 소년의 마음속에 소녀가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급기야 하루는 소년이 개울가에 자리 잡고 앉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소녀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물장난을 칩니다. 그런데 이걸 어쩝니까? 바로 그 순간 소녀가 뒤에 와서 소년이 하고 있는 행동을 다 지켜본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소년은 너무 부끄러워 멀리 도망을 칩니다. 소년은 쥐구멍에다로 들어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소녀가 소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때 소녀는 소년에게 비단조개도 보여 주었습니다. 전에는 조약돌을 던지며 ‘바보’라고 했던 소녀가, 비단조개를 보여주며 말을 걸어온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의 확신을 하게 됩니다. 소녀도 소년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 소년과 소녀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 이 둘만의 추억쌓기 활동이 시작됩니다. 소년과 소녀는 황금빛 가을 들판을 달리고 붓도랑물을 건너 산밑에 이릅니다. 가을꽃을 꺾으며 산을 오르기도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마치 풋풋한 데이트의 한 장면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소년과 소녀가 산중턱을 오르던 도중이었습니다. 시내 한 복판에서 소나기를 만났다면, 소나기는 쉽게 피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 건물의 처마 밑에만 들어갔다가 소나기를 피하면 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소년과 소녀가 있던 장소가 어디입니까? 바로 산중턱입니다. 산중턱에서 소년과 소녀는 비를 피할 장소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 허물어진 원두막의 마른 수숫단 속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비를 피한 다음 돌아오는 길에 보니 붓도랑 물이 불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소년은 소녀를 업고 붓도랑을 건넙니다. 처음 소녀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부끄러워서 도망치던 소년에 비하면, 많이 대범해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새 하늘은 활짝 개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살짝 기대를 할지도 모릅니다. 소년과 소년의 풋풋한 사랑에 진전이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소년은 오랫동안 소녀를 못 보게 됩니다. 아마도 그때 소년은 소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녀가 보이지 않으니까 소녀의 소식이 무척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소년은 소녀를 다시 만납니다. 거기에서 소년은 소녀가 소나기를 맞고 앓았고 다 낫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소년은 자신의 등에 업혀 붓도랑을 건너던 소녀의 분홍 스웨터에 풀물이 든 것도 보게 됩니다.
그때 소녀는 제사를 지내려다가 아침에 땄다는 대추를 소년에게 건넸습니다. 대추는 소녀가 소년에게 주는 선물인 셈입니다. 지금이야 용돈으로 마트나 가게에 들어가 여러 가지 선물을 골라 살 수 있지만, 1950년대의 산골 마을에서는 그게 가능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선물을 받은 소년도 소년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년은 이튿날 밤에 몰래 소녀에게 줄 호두를 따러 갑니다.
거기에서 소년은 마을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것은 윤초시네가 이사를 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소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호두를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을에 갔다 온 아버지의 말이 소년의 귓가에 쏙 들어오고 맙니다. 아버지는 윤초시네 증손녀딸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또 소녀가 죽을 때 자기가 입던 옷(소년이 업어주었을 때 풀물이 들어버린 분홍 스웨터)을 그대로 입혀서 묻어달라고 했다는 소리도 듣습니다.
소년과 소녀의 천진난만한 풋사랑이, 소녀의 죽음으로 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렇지만 황순원은 그들의 풋사랑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했습니다.
이것은 한국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도 비슷한 여운을 줍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도 남녀 주인공들은 서로 호감이 있지만, 그들의 풋풋한 사랑은 진전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다가 남자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들 사이의 풋풋한 사랑도 끝이 납니다. 그들의 순진한 사랑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 아름다운 작품의 여운은 우리들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잡게 됩니다.
이것처럼 황순원은 그의 작품 속에서 아름다움이 형상화되길 늘 바랐습니다. 그래서 황순원의 소설을 흔히 ‘아름다운 서정과 사랑’을 그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결말이 비극적이더라도 그 결말은 무척 낭만적인 것으로 황순원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소망이 얼마나 큰지를 드러내줍니다.
“내가 용기를 잃지 않는 건 나도 늙으면서 아름다워지는 축에 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다듬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욕망이 아니고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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