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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이꽃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별뜨락 2019. 10. 9. 23:39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읽고



-흔하지 않은 이름, 은유-


세계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세계의 겉모습만 보느라, 세계의 진짜 모습은 못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라는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나도 그랬다.

이건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은유가 보낸 편지가 30년도 전의 누군가에게 전달될 수가 있지? 1980년대에 사는 아이가 어떻게 지금의 은유에게 답장을 할 수가 있지?’

게다가 시간을 초월해서 편지를 주고받는 두 아이가 이름까지 똑같다는 건 엉터리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현재의 은유에게 도착한 편지는 진짜로 세계를 건너서 온 편지라고 믿지를 못했다. 은유가 받았던 편지는 누군가가 장난으로 쓴 편지라고 생각했다. 은유가 받은 편지는 은유의 아빠, 할머니가 쓴 편지이거나 은유의 새 엄마가 될 아줌마가 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책장을 빠르게 넘기면서 은유에게 장난을 친 사람이 누군지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나의 관심사는 점점 다른 데로 옮겨졌다. 은유에게 장난 편지를 쓰는 사람을 찾고 싶은 마음보다도 과거의 은유와 현재의 은유가 살아가는 모습이 더욱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10대 소녀인 현재 은유. 그리고 80년대와 90년대를 살아갔던 은유.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두 명의 은유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물론 과거의 은유와 현재의 은유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 둘에게 처해진 환경은 다른 점이 많았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고 신기했던 건, 두 명의 은유가 똑같이 가족 때문에 고민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다.

과거의 은유는 태어나면서부터 언니와 비교를 당했다. 은유의 엄마는 뭐든지 뛰어나게 잘 하는 언니와 은유를 비교하는 엄마였다. 또 은유의 아버지는 툭하면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를 못해서, 은유네 집은 항상 가난했다. 과거의 은유는 가난하면서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게 하는 가정에서 슬퍼하고 고민했다.

현재의 은유는 엄마의 존재도 모르는 채로 살아왔다.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엄마가 왜 곁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빠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은유에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키웠다. 그런 은유의 아빠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은유는 그런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두 명의 은유에게 가정이란, 따뜻함보다는 차갑고 상처받는 곳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명의 은유는 가정에서 받은 서로의 상처를 벗어나기 위해 서로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먼저 과거의 은유는 미래의 은유가 알려주기로 한 학력고사 문제와 로또 번호를 알고 싶어 했다. 학력고사 문제를 미리 알고 있으면, 우수한 성적을 얻어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 로또에 당첨되면 가난한 가정에서 벗어나 부유하게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은유는 엄마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과거에 살고 있는 은유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과거에 살고 있는 은유에게 엄마를 찾아달라고 한 것이다.

책 내용에 빠지면 빠질수록, 나는 과거의 은유와 현재의 은유의 작은 소망을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은유는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루어내지 못했다. 남은 건 현재 은유의 소망뿐이었다. 현재 은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두 명의 은유는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은유는 과연 엄마를 찾아낼 수 있게 될까?’

나는 시간을 초월해서 편지를 주고받는 두 명의 은유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엄마 없이 자란 외로운 아이, 은유. 은유에게 엄마의 정체를 알게 해준다면, 그동안 받았던 은유의 아픔이 낫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은유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걸 보고 싶어서, 책에서 잠시도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책의 끄트머리에서 은유 엄마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정말 놀라게 되었다.


은유 엄마의 정체가 밝혀지자, 두 명의 은유가 안쓰러워서 울컥했다.

슬픈 마음으로 책 표지에 그려진 두 명의 은유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편지를 들고 있는 두 명의 은유는 표정이 너무 밝았다. 그런 두 명의 은유를 보고나자, 내 마음속의 슬픔도 천천히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두 명의 은유는 이제 행복할거야!’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된 두 명의 은유는 서로의 상처를 낫게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현재의 은유는 과거의 은유를 통해 아빠의 과거를 알게 되었고, 아빠를 향해 닫혀있던 마음을 조금씩 열어 나갈 수 있었다.

두 명의 은유가 행복해졌다는 걸 알게 되자, 우리는 세계의 겉모습만 보느라 세계의 진짜 모습을 못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크고 씩씩한 겉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 아빠가 어쩌면 지치고 힘들어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 강하고 부지런한 우리 엄마는 어쩌면 연약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강할지도 모른다

가족의 속마음을 헤아려주고, 서로 위로가 되어줄 때 우리는 세상을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자 흔하지 않은 이름인 은유가 아주 친숙하게 느껴졌다. 은유가 아주 친숙한 우리 가족의 또 다른 이름처럼 느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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