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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네 집
김동인 감자, 작품속에 숨겨진 예술성과 순수성 본문
개화기 이후 우리나라에도 신소설이 등장했지만, 그 시절의 소설들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소설들의 내용은 대부분 작가가 의도하는 도덕, 세계관 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계몽적인 것이었습니다. 조선의 3대 천재라고 일컬어지던 춘원 이광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춘원 이광수는 한국 근대 문학사를 개척한 업적을 남겼지만, 그의 문학은 여전히 계몽주의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김동인은 문학의 예술성과 순수성을 자각했습니다. 그럼으로써 본격적인 근대문학의 확립에 기여를 했고, 아마도 이런 점을 기리며 문학계에서는 ‘동인문학사’를 지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예술성은 그의 개별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되었을까요? 김동인의 삶과 작품을 통해, 김동인의 예술 세계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동인의 삶
1900년 김동인은 평양의 갑부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둘째 부인의 첫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김동인에게 여러 책을 들려주었습니다. 또한 안창호, 이승훈 등을 초청하여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김동인은 열네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김동인은 처음에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톨스토이를 접한 김동인의 삶은 문학이 그 중심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김동인이 17세 되던 해,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동인의 아버지는 김동인에게 상당한 재산을 물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귀공자처럼 자라났던 김동인은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1919년 동경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동인지인 ‘창조’를 자비로 간행하면서, 문학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귀국 후에도 계속해서 발간을 해오던 ‘창조’를 결국 폐간하고 맙니다. 심각한 경영난 때문에 폐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김동인은 주색에 빠지는 등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1923년 ‘목숨’을 자비로 출판하고, 1924년에는 ‘영대’를 간행했지만, 이것 역시 모두 폐간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가산을 탕진하게 되면서 급기야는 평양에 있는 집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김동인은 신경증과 우울증을 앓게 됩니다. 이런 김동인을 보고 그의 아내는 네 살 난 딸과 함께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1931년에는 김경애와 재혼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경증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신경증은 극에 달했는데 생활난을 극복하기 위해 신문과 잡지에 수많은 글을 썼던 게 원인이었습니다.
1950년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의 건강은 매우 나빴습니다. 거동을 할 수가 없어서 피난조차 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결국 1.4 후퇴 때 가족들이 피난을 간 사이 그는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김동인의 인형조종술
김동인은 자신의 창작 방법을 가지고 ‘인형조종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신이 창조한 인형을 다루듯 소설 속 인물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의미로 고안해낸 것입니다.
“인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인형 놀리듯 하는 놀음이다.”
바로 이것이 김동인의 인형조종술의 핵심입니다.
그러면서 김동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술의 위대함이 자연의 위대함보다 더 생명력 있고 더 큰 것이다.”
이와 같은 예술지상주의적 문학관을 바탕으로 김동인은 시점의 도입, 과거시제의 사용, 액자 형식 사용 등 미학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김동인 감자
김동인은 소설 속에서 인간을 환경에 의해 지배받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멀쩡하던 인간이 환경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감자의 주인공, 복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복녀도 처음에는 말짱한 처녀였습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복녀는 가난하지만 정직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예의 바르고 착하게 자라나던 처녀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복녀에게 주어진 상황이 변하는 계기가 생깁니다. 그것은 바로 복녀의 결혼입니다. 복녀는 열다섯 살 나던 해에 돈에 팔려 시집을 갑니다. 그런데 그녀보다 이십년이나 연상이던 그녀의 서방은 무능한데다가 게으르기까지 합니다.
정말 갑갑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돈에 팔려 억지 결혼을 한 것도 억울한데, 거기에다가 남편이 무능하고 게으르다니요.
그러나 복녀는 이런 답답한 상황에 그냥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복녀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거지 행각과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기자묘 솔밭에 송충이가 들끓자 평양부에서는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을 동원하게 됩니다. 하루에 삼십이 전 벌이의 송충이잡이를 복녀가 마다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돈을 벌러 송충이잡이에 나갔던 복녀는 우연히 감독과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고, ‘일 안하고 공돈 많이 받는 인부’가 되고 맙니다.
“복녀의 도덕관 내지 인생관은 그때부터 변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녀는 점점 더 부도덕한 일에 빠져들었습니다. 감자를 도둑질하다가 왕서방에게 들키자 복녀는 용서의 대가로 다른 것을 지불합니다. 그 뒤로 왕서방과의 관계는 계속되지만 복녀의 남편조차도 둘 사이를 묵인하고 맙니다.
그러다가 왕서방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질투심에 불탄 복녀는 혼례가 있던 밤에 왕서방의 집에 쳐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비극적으로 생이 끝나버린 복녀에게 자비란 없었습니다. 남편, 한방의, 왕서방은 죽은 복녀를 둘러싸고 앉아 돈을 주고받습니다. 그 결과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이 내려진 채, 공동묘지에 묻힙니다.
이렇게 ‘감자’는 끔찍하고 비참하게 끝을 맺습니다. 어떻게 예의 바르고 착하게 자라났던 복녀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요? 이 작품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가난이라는 물질적 조건, 즉 환경이 인간의 타락에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가입니다.
처음에 복녀는 마음속에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혼 이후 몰락의 과정을 겪으면서 성격도 변해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도덕관과 인생관까지 바뀌고 맙니다. 타락한 행동을 하던 복녀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을 놓고 흥정을 합니다.
이렇듯 이 작품에서 작가는 ‘감자’라는 물질이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황폐하게 만들고 타락하게 만드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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