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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감통> '선도성모의 수희불사'- 한글 번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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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감통> '선도성모의 수희불사'- 한글 번역

별뜨락 2020. 2. 25. 22:15

삼국유사 <감통>은 인간과 신의 교감을 다룬 내용이지요.

한글로 번역된 자료가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 <감통> 중에서 '선도성모의 수희불사'  내용을

실어놓아요~




선도성모의 수희불사



진평왕 때에 비구니 지혜라는 이가 있었는데, 행실이 매우 어질었다. 지혜는 안홍사에 머물면서 불전을 새로 수리하려 하였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였다. 어느 날 지혜의 꿈에 얼굴이 아리땁고, 구슬과 비취로 머리를 장식을 한 선녀가 나타나서 지혜를 위로하였다.


"나는 곧 선도산 신모인데, 네가 불전을 수리하려는 뜻이 기뻐서, 나머지 황금 열근을 회사하여 도울테다. 금은 내가 앉은 연좌 아래에서 취하여 주존 삼상을 단장하고, 벽 위에는 오십삼불 · 육류성중과, 제천신 · 오악신군을 그려넣고, 해마다 봄 3월, 가을 9월 초열흘날 선남, 선녀를 많이 모아 일체 중생을 위하여 점찰법회를 열되, 항규를 삼아다오."


지혜가 놀라 깨어 무리를 거느리고 그 신사 연좌 밑에 이르렀는데, 신모의 말처럼 황금 1백 60냥이 있었다. 지혜는 이를 발굴하여 절을 수리한 공적을 이루었으니, 이는 모두 신모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르러서는 그 일은 남아있으나, 법사는 이미 폐지되었다. 


지혜의 꿈에 나타난 신모는, 본래 중국 제실의 딸인데, 이름은 '사소'였다. 일찍이 신선의 방술을 얻어 해동으로 와서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을 제, 부황이 솔개 발에 글을 매어 부쳤다.


"이 솔개가 그치는 곳에 집을 짓고 살아라."


'사소'가 그 글을 받고 솔개를 날렸더니, 솔개가 날아 어떤 산에 이르렀다가 그쳤다. '사소는' 곧 솔개가 그친 곳으로 가서 집을 세우고 지선이 되었는데, 그로 인해 이름을 '서연산'이라고 하였다. 신모가 오랫동안 이 산을 점거하여 나라를 도와서 영이한 일이 심히 많았으므로 나라가 창건된 이래로 늘 삼사의 하나가 되어 차례가 군성의 위에 있었다. 제오십사 경명왕은 매 사냥을 좋아하였는데, 일찍이 이 산에 올라 매를 놓았다가, 잃어버리고는, 신모에게 기도하였다. 


"만일 매를 찾게 된다면 마땅히 벼슬에 봉하리라."


그런지 얼마 안 되어 매가 날아와 책상 위에 앉았다. 곧 대왕을 봉하였다. 


신모가 처음 진한에 왔을 때 성자를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었으니, 대개 혁거세와 알영 두 성인의 태어난 근본이었다. 그러므로 계룡, 계림, 백마 등의 이름이 있었다. 닭은 서방에 속하는 까닭이다. 신모는 일찍이 모든 천선으로 하여금 비단을 짜서 붉은 물을 들여 조의를 지어 그 남편에게 입혔으니, 나라 사람들이 이로 인하여 그의 신험을 알게 되었다. 


또 '국사'에 나와있는 사신의 기록은 이러하였다.


<식이 정화년간에 일찍이 사신으로 송나라에 들어가 신우관에 나아갔을 때 한 불당에 여선상이 있었는데, 관반 학사 왕보가 이르기를 '이것은 귀국의 여신인데, 공은 잘 아느냐.'라고 묻기에, 나는 '옛날 중국 제실의 딸이 바다를 건너 진한에 이르러 아들을 낳아 해동의 시조가 되었고, 이 선녀는 지선이 되어 길이 선도산에 머물으니, 이것이 곧 그의 화상이랍다.'하고 대답하였다.>


또 송나라 사신 왕양이 우리 나라에 왔을 때 동해신모에게 치제를 올렸는데, 그 글에 

<어진 이를 잉태하여 이 나라를 처음 열었도다.>라는 글귀가 있었다. 이제까지 금을 시주받아 부처님을 받들고, 중생을 위해 향화를 열고, 진량을 삼았으니, 어찌 다만 장생술을 배워 저 홍몽한 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이랴.


찬하되,


서연에 집 세운지,

몇 해나 되었던고,

선녀들을 멀리 불러,

예상을 짜냈도다.

장생이란 반드시,

무생과 다름 없기에.

그러므로 금선 뵙고,

옥황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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