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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모음, 마음속에 시인의 감성이 꼼지락꼼지락

별뜨락 2019. 2. 15. 21:41

지난 여름, 아이들과 함께 인왕산 둘레길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그 길을 따라가다가 윤동주 문학관을 보았죠.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윤동주 문학관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윤동주 문학관에는 시인이 직접 쓴 원고와 책이 전시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보고 나니 윤동주의 삶과 문학이 제 마음에 새겨지는 것 같더군요

최근에는 모나미 볼펜 윤동주 에디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그건 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젊은 시인의 삶과 작품이, 지금 우리에게도 큰 울림이 주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윤동주의 시를 몇 편 적어봅니다.

이미 배워서 친숙한 시라고 해도, 윤동주의 시는 두고두고 읽을 때마다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서 윤동주의 고뇌와 생각들을 짐작해 보셔도 좋고,

지금 나의 상황을 시의 화자에 이입시켜 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윤동주 시와 함께 시의 감성에 푹 빠져드는 하루를 보내세요!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워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읍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 ,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24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편지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십자가

 

쫒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에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尖塔(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 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쉽게 씌어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어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려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가?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씨워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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