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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모음, 이별과 슬픔을 어루만지다.

별뜨락 2019. 2. 17. 15:54

김소월 시에는 이별과 슬픔의 정서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김소월의 시를 읽고 나면, 가슴 저린 한 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먹먹합니다.

 

어쩌면 김소월의 시는 그의 삶과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김소월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김소월이 어렸을 때 김소월의 아버지는 일본인에게 구타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정신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아버지가 있는 집에서, 김소월은 내성적인 아이로 자랐습니다.

그러던 김소월은 오산학교에 입학을 했죠. 오산학교에서 김소월은 스승인 안서 김억을 만났답니다. 김억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 봄은 간다.’를 지은 시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산학교에서 만난 김억과 김소월은 단순한 스승과 제자 관계를 넘어섰습니다. 김억의 아낌 없는 지원으로 김소월은 서정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시를 짓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던 김소월에게 그의 재능을 활짝 꽃 피게 해준 오산학교. 이런 오산학교가 김소월에게는 매우 특별한 곳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오산학교는 김소월이 졸업하기도 전에 불타 없어져 버렸습니다. 3.1운동 직후 일본인들이 오산학교가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며 불태워버린 것입니다.

그 후로도 김소월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소월은 김억 선생님의 권유로 일본 유학을 하게 되었는데, 하필 유학 첫 해에 일본의 관동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인명과 재산 피해가 컸던 일본에서는, 지진 직후 거짓 소문이 돌았습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느니, 폭동을 계획하고 있다느니, 하는 헛소문이 떠돌았고, 이 소문 때문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는 동안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한이 김소월의 가슴에 스며들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결국 김소월은 32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김소월의 작품은 슬픔의 정서가 주를 이룹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이별과 슬픔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죠.

 

이제는 이별과 슬픔을 어루만지는, 김소월의 시를 한 번 감상할 차례입니다.

김소월의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짐작하며 김소월의 입장에서 시를 이해하셔도 되고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입장에서 시를 이해하셔도 됩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시를 읽으시든지, 시의 슬픔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정화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산유화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못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라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러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금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 붙은 불은

가신 님 무덤가의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의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어제도 하루 밤

나그네 집에

까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 이 갈 길은 하나 없소.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 넘어 갈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은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 오 년 정분을 못잊겠네

 

산에는 오는 눌,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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