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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네 집
동화 - 하룻고양이를 구해줘 본문
아이들 읽을거리를 위해, 동화 한 편 올려 놓습니다. 이 동화는 '이카네 집'이 창작한 동화이니, 표절은 안 됩니다~^^ |
하룻고양이를 구해줘.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처럼, 하룻고양이는 선배 무서운 줄을 모른다. 그 조막만 한 고양이는 이 집에 온 첫날부터 다짜고짜 반말을 찍 내뱉었다.
“야, 너도 여기에 사냐?”
살다 살다 이런 녀석은 처음 봤다. 내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딱 보면 모르나?
‘까짓것, 계속 볼 사이도 아닌데, 하루만 참지 뭐.’
화가 쑤욱 올라오긴 했지만, 꾸욱 참기로 했다. 집사 할머니가 그 꼬맹이를 딱 하루만 데리고 있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우와, 이 집 마음에 들어!”
아무 것도 모르는 꼬맹이는 우리 집이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저기를 촐랑거리며 다녔다. 나는 그런 꼬맹이를 흘끗흘끗 돌아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빨리 하루가 후딱 지나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이상했다. 집사 할머니가 말했던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그 꼬맹이는 우리집에 계속 있었다.
‘어, 뭐지?’
집사 할머니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집사 할머니가, 이 집에 고양이를 두 마리씩이나 두려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머릿속에 2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집 없이 떠돌며 굶주리던 나를 집사 할머니가 여기로 데려오던 때가 말이다. 그날 이후로 집사 할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같이 나에게 먹을 것을 갖다 바쳤다. 세상에, 그 음식은 고약한 냄새를 참아가며 음식 쓰레기통에서 찾아낸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집사 할머니는 나를 위해서라면 더럽고 귀찮은 것까지도 다 해냈다. 그것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충성을 바친 게 아니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집사 할머니는 털뭉치 인형도 직접 만들어주었다. 요리조리 털뭉치를 만져서 물고기 모양이 된 털뭉치는, 내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이다.
‘안 돼!’
눈앞에 알짱거리는 꼬맹이 녀석을 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사 할머니가 저 꼬맹이 녀석까지 챙기는 건 싫었다. 그래서 그 꼬맹이를 ‘하루’라고 부르기로 했다. 딱 하루만 더 있다가 이 집을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야!”
“너 지금 나더러 하루라고 했냐?”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그거 나쁘지 않은데?”
그 뒤로 하루에도 ‘하루’를 수없이 불러댔다. ‘하루’가 하루빨리 이 집에서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듬뿍 담아서.
톡톡톡, 누군가 자고 있는데 건드렸다. 눈을 반쯤 떠보니 하루였다. 나는 옆으로 돌아누우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야, 일어나 봐.”
하루는 자기랑 어울리지도 않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못 들은 척을 했다. 그러자 하루는 조금 전보다 더 세차게 나를 툭툭툭 건드렸다.
“너 깬 거 다 아니까, 얼른 일어나라.”
선배도 몰라보고 버릇없이 구는 하루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감았던 눈을 더욱 꽉 감았다. 그런 다음 코 고는 흉내를 내려고 숨을 거칠게 들이마셨다. 그런데 그 순간 하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 여기에서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냐?”
‘뭐, 뭐라고? 이 집에서 나가겠다고?’
하루의 말을 듣자마자 저절로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너무 기쁜 나머지, 하마터면 높이 뛰어오를 뻔했다.
이럴 땐 속마음을 들키면 안 된다. 나는 하품하는 척하며 입을 열었다.
“아함, 밖으로 나가려고?”
하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앉았다. 두 귀까지 쫑긋하는 하루를 보며 이렇게 말할 참이었다.
‘그거야 할머니가 나갈 때 따라 나가면……’
그런데 그때 마침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거였다.
‘잠깐. 이 녀석이 밖으로 나가겠다는 건, 집사 할머니 몰래 나가겠다는 거 아니겠어?’
나는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을 하기로 했다.
“조금 전 할머니 외출했는데.”
침을 꼴깍 삼킨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할머니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집을 나가겠다는 말이지?”
“당연한 거 아니야?”
하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집사 할머니 없이 밖에 나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할머니 없이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하루가 제 발로 집을 나가겠다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루를 도와야 할 게 아닌가.
“하루야, 기다려 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데를 찾아볼게.”
그때부터 집안을 구석구석 살폈다. 안 열리는 창문을 낑낑대고 밀어보고, 바닥도 벅벅 긁어 보았다. 높은 가구 꼭대기에 올라가서는 천장을 푹푹 뜯어보기도 했다.
나를 지켜보던 하루가 불쑥 말을 꺼냈다.
“한 가지 더 물어볼게. 여기에서 돌담집까지는 머냐?”
나는 건성으로 “응.”하고 대답했다. 물고기 모양의 털뭉치가 들어있는 수납장을 열면서. 혹시 무슨 비밀 통로라도 찾아낼까 봐 그 안에 있는 물건을 다 들추어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하루가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나는 힘이 빠져 바닥으로 살며시 내려왔다. 그렇지만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샅샅이 찾아보면 어디서 구멍 하나 나타나지 않겠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하는데, 하루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오랜만에 몸을 많이 움직여서 그랬나? 집안 곳곳을 오르락내리락, 엎치락뒤치락하는 동안 힘이 쭉 빠져버렸다.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찾아볼게.”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 하루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방 안에 있는 베개가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베개가 따뜻한 봄날처럼 포근해서 어느새 나는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집사 할머니가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집사 할머니는 신발을 후다닥 벗어 던지고, 급하면서도 요란한 발소리를 냈다.
“아이쿠,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나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살그머니 거실로 나갔다.
“에구.”
집사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벽과 천장에는 할퀸 자국이 생겼고, 수납장은 활짝 열린 채 물건들이 왕창 쏟아져 있었다.
주변을 빙 둘러보던 집사 할머니와 눈이 딱 마주쳤을 땐, 좀 뜨끔해서 딴 데를 쳐다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기가 죽으면 안 된다.
‘나는 고양이, 할머니는 집사!’
나는 의기양양하게 등을 곧게 세웠다. 그런 다음 가볍고 우아하게 집사 할머니 앞을 지나갔다.
순식간에 주름 몇 개가 더 생긴 집사 할머니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기가 낯설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나? 냐옹아, 어디 있니?”
집사 할머니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하루를 찾아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내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그건 바로, 뜯긴 방충망이었다. 원래 방충망 구멍은 쌀알보다 작다. 구멍이 조금만 벌어져도 그 사이로 벌레가 들어오기 때문에, 집사 할머니는 틈만 나면 방충망을 매만지고 고쳤다.
말짱하던 방충망에 커다랗고 둥그런 구멍이 생기다니! 그걸 보고 나는 알았다. 하루가 이 집에 없다는 것을.
“야호! 이렇게 개운할 수가”
목구멍을 찔렀던 생선 가시가 쑥 빠질 때도 이런 기분일까? 나는 기분이 좋아서 바닥에 등을 비볐다. 참, 이럴 땐 물고기 모양의 털뭉치가 있어 줘야 한다. 나는 털뭉치를 가지러 몸을 휘리릭 뒤집고, 수납장 쪽으로 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찾아도 털뭉치가 보이지 않는 거였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수납장 안을 살피고 떨어진 물건 더미를 헤쳤지만, 털뭉치는 찾을 수 없었다.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뜯긴 방충망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 아니, 이건.’
방충망 끝에는 작은 털뭉치 조각이 걸려있었다.
‘아니, 하루 이 녀석이?’
나는 씩씩거리며 방충망의 구멍을 더 크게 벌렸다. 다른 건 몰라도 털뭉치만큼은 안 된다. 그게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 건데. 방충망을 빠져나가며 나는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선배 무서운 줄도 모르는 하룻고양이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고.
드디어 돌담집에 도착했다. 여기에 온 건, 하루가 돌담집에 대해 물었던 게 떠올라서였다. 돌담집은 집 없는 고양이들이 비나 눈을 피해 가끔 머무는 곳이다. 집사 할머니를 만나기 전까지 나도 가끔 이곳에 들렀다.
허물어진 돌담 뒤에 숨었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언뜻 보였다. 담에 가려졌지만, 왠지 하루처럼 보였다. 그 고양이는 보송보송한 솜털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아니, 저건.’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그건 물고기 모양의 털뭉치였다. 나는 화가 나서 돌담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루, 너!”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나를 본 고양이가 갑자기 잔뜩 웅크리는 거였다. 몸까지 바들바들 떨었다. 하루였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기세등등했을 텐데 말이다.
“너, 하루 아니야?”
내 소리를 들은 고양이가 살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우리 형은 방금 전 집으로 돌아갔는데?”
“하루가 너희 형이야?”
“응. 형 친구가 하루하루 계속 같이 살자고 그렇게 이름 지어주었대.”
고양이는 하루와 생김새가 비슷했다. 하지만 하루보다 훨씬 더 작았다. 그야말로 진짜 하룻고양이였다.
“이걸 갖다 주라고 한 게, 형이었어?”
하루 동생은 앞발을 감싼 털뭉치를 내밀었다.
“형, 정말 고마워. 이게 있으니까 걸을 때 안 아파.”
자세히 보니 하루 동생의 앞발엔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뒤뚱거리며 걸었다. 그 모습을 보니 차마 털뭉치를 돌려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뭘, 고맙기는.”
나는 털뭉치를 그냥 놔두기로 하고, 돌담집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의 색이 하루 동생의 털 색깔과 닮아서였을까? 마음이 이상했다. 한발 내디딜 때마다 가슴이 삐걱거렸다. 집사 할머니도 이랬나? 문득 2년 전 집사 할머니를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굶주렸던 나를 보고서 자꾸만 뒤돌아보던 집사 할머니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는 가던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하루 동생을 데리고 함께 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뛰면서 생각했다.
‘집사 할머니가 고양이 세 마리를 돌보는 건 힘들 거야. 그러니까 하루 동생은 내가 보살펴야지. 먹을 것도 챙겨주고, 놀아주고. 또 잠도 재워줄 거야.’
이렇게 마음을 먹었더니 온몸에 따뜻한 느낌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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