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 올라가지 마.

얼마 전, 기상청에서 주최하는 기후변화과학 통합 공모전이 열렸어요.

평소에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았기에, 스토리 부분에 응모를 했었죠.

 

그런데 며칠 전 홈페이지를 보니, 예선에 통과가 되어 대국민 투표를 하는 작품으로 올라가 있는 거예요.

 

그 뒤로 본선에 선택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며칠을 설레이며 지냈는지 몰라요.

그러나 그대와는 다르게, 최종 결과는 탈락.

 

괜한 기대감에 며칠을 붕붕 떠서 지냈던 게 씁쓸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이 블로그가 있기에~

여기에다가 제 작품을 실어보렵니다~^^

 

글을 읽어보시면서, 기후변화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보시는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네요.

 

올라가지 마

 

 

   1. 대탈출

 

‘어디로 가야 하나.’

그는 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두리번거렸다. 짐을 짊어지고 도시를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턱밑까지 쫓아온 끔찍한 바이러스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우왕좌왕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감염이 되자마자 순식간에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바이러스로부터 딸을 지켜내기 위해, 그는 서둘러야만 했다.

“아빠, 우리 어디로 가야 해?”

딸의 목소리를 듣고도, 그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딸을 더욱 단단하게 감싸 안으며, 잠시 먼 산을 바라보았다. 제법 높은 산이었다. 강물이 밀려가듯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태연아, 아빠하고 저기로 올라가야 하니까, 아빠 꽉 잡아!”

그는 산으로 올라갈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산은,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는 바이러스로부터 탈출해서 머무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딸을 번쩍 들어 안고, 끝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 한 군데를 골라 잽싸게 비집고 들어갔다.

무리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발을 내디디면서 그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아, 어쩌면……. 그 봄부터…….’

그는 그 봄에서부터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하나씩 되짚어나가기 시작했다.

 

 

 

   2. 그렇게 지나간 봄

 

5월의 봄은 무척 더웠다. 기상청에서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5월이라고 했지만, 그는 시큰둥했다. 해마다 ‘기상 관측 이래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그 기록이 다음 해엔 번번이 깨져버리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가끔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아내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워내는 것. 그것 말고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기온이 올라서 더욱 무더워지면, 에어컨 온도만 더 낮추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도 놀라운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그건 딸 아이가 친구네 집에 다녀온 뒤에 있었던 일이었다.

“아빠, 이것 좀 봐! 이게 친구네 집 마당에서 자랐어.”

딸 아이가 그에게 내민 건, 노랗게 잘 익은 바나나였다.

“정말이야? 이게 친구네 집에 열렸다고?”

그는 딸 아이와 바나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응. 우리나라 기후가 변해서 이젠 바나나 같은 것도 잘 자란대.”

그는 눈앞의 바나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몇 번이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참, 별일이네.”

 

 

 

   3. 애써 외면한 여름

여름이 되자 ‘불지옥 더위’, ‘최악의 폭염’이라는 말이 일기예보를 장식했다. 지독한 가뭄과 물난리도 번갈아 나타났다. 여기까지만 해도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예전과는 뭔가가 달랐다. 하늘이 미세먼지로 심하게 그을렸고, 일부 해안가 지역은 물에 잠겨버린 것이다. 이 모든 게 빙하가 급격하게 녹아내린 탓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런 지경에 이르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뭐, 큰일이야 일어나겠어?’

그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런 다음 집안에서 놀고 있는 딸을 위해, 에어컨 온도를 낮추고 공기청정기를 끊임없이 틀어놓았다.

 

 

 

   4. 어쩔 수 없는 가을

 

가을과 함께 공포의 소식이 전해졌다. 전 세계 곳곳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한 괴상한 바이러스. 빙하 속에 녹아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전세계로 퍼져나간 것임이 밝혀졌다. 그것은 이제까지 인류가 겪은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바이러스였다. 그 바이러스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의약품도 무용지물이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일단 감염이 되면, 그냥 자신의 몸이 빠르게 굳어가는 걸 보다가 끝내 눈을 감게 되는 무시무시한 바이러스.

 

 

 

   5 너무 늦어버린 겨울

그는 이제 어떻게 해서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깨달았다.

‘그랬군.’

산을 향해 걷던 그가 한숨을 쉬었다.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고, 기후가 변화되는 것. 그는 지금까지 그것에 관심이 없었던 걸 후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우선 태연이를 데리고 저 산에 올라가자! 거기에서 사람들의 지혜를 모은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그때, 앞서가던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올라가지 마!”

그 순간 그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가 오르려던 산에서 자욱한 연기와 함께 불길이 번져나가는 게 아닌가!

‘결국 기후변화 때문에…….’

넋이 나간 그의 얼굴에 눈물이 떨어졌다.

‘분명 늦지 않았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올라가지 말도록 해봤어야 했는데.’

 

아직도 공모전 홈페이지에는, 예선을 탈락한 이 작품이 실려있더라고요. 그런데... 작품 옆에 새겨져 있는... 너무도 민망한 투표 숫자! 이미 탈락한 작품이니 투표 숫자와 함께 홈페이지에서는 지워주셨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