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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및 민족운동에 앞장 선 종교 활동 (요점 정리)

별뜨락 2021. 7. 10. 01:11

한국사 <1920년대 무장 활동과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 <민족운동에 앞정선 종교 활동>을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해 놓았습니다.

각종 시험 대비하시는 분들께서 이 글을 보시고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1920년대 무장 활동

 

1910년대 만주, 연해주 일대 무장 독립군 양성 3.1운동 이후 젊은이들 국경 넘어 독립군 가담
수많은 독립군 부대 창설 : 독립군이 수시로 국내 진입하여 일제 군부대나 경찰관서 등 습격
봉오동 전투
(1920. 6)
일본군이 두망강 건너 독립군 공격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 중심 + 여러 독립군 부대
봉오동으로 유인하여 크게 격파
청산리 전투
(1920. 10)
일제는 대규모 부대 동원해 독립군 공격김좌진의 북로 군정서군 + 홍범도(대한)독립군
청산리 일대 유리한 지점 미리 차지하고 추격해온 일본군에게 일대 반격 가함
일본군 대파하고 독립 전쟁 사상 가장 큰(빛나는) 성과를 거둠
<일본군 움직임을 알려주고, 식량·군수품 지원한 간도 동포들의 헌신적 뒷바라지가 큰 역할>
-청산리 대첩의 전과 : 독립군 사상자는 적고, 일본군 사상자가 매우 많음
-청산리 대첩 이후 서일이 임시 정부에 보고한 내용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독립군의 군인 정신이 일본군의 사기를 압도
·유리한 진지를 미리 차지하고, 완전히 준비하여 사격 성능을 극도로 발휘
·임기응변의 전술과 신속한 활동이 모두 적의 허점을 찌름

 

 

   2. 민족운동에 앞장선 종교 활동

 

-종교계는 일찍부터 항일운동, 계몽운동에 앞장섰고, 일제의 회유와 탄압에 맞서 활발한 민족 운동 전개

대종교 -단군 신앙, 민족 종교로 민족운동의 구심점 /간도(일제강점 직후 교단 본부 옮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하는데 많은 인물 참여 /대종교인-안희제(임시정부 군자금 지원 큰 역할), 주시경(한글 연구), 이극로(한글 학자) / 신채호, 정인보 등 민족주의 사학에도 영향을 줌
-중광단 조직하고 독립군 사관 양성소 세움적극적 항일무장투쟁 준비 독립군 사관 양성소 설치 (중광단은 청산리 대첩에 큰 공적 남긴 북로 군정서로 발전; 만주 독립전쟁 주축)
천도교 동학 계승, 3.1운동 주도, 23.1운동 계획, 청년회 소년회 만들어 청년·여성·소년 운동 전개하면서 민족의식 고취
불교 한용운 항일운동 앞장, 청년 승려들 조선 불교 유신회 조직일제의 불교 통제와 한국 불교를 일본 불교에 통합하려는 시도에 맞섬
원불교 박중빈 창시, 개간 사업, 저축 운동, 생활 개선 운동(허례 폐지, 근검절약)
천주교 고아원과 양로원 등 사회사업에 주력
개신교 교육과 의료 사업, 신사 참배 강요 반대 운동

일제강점기 여러 종료 단체들은 민족운동, 사회 운동 전개하여 사회발전에 기여, 그러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일제에 적극 협력하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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