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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네 집
이상, 요절한 천재의 우여곡절 인생사 본문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이상의 시를 읽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이상의 작품 앞에서, 저와 친구는 열띤 토론을 벌였답니다. 이처럼 이상의 시는 지금의 우리가 읽기에도 애매한 것들이 많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난해한 이상의 시가, 1930대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섰을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이상의 우여곡절 인생사
이상은 이발소를 운영하던 아버지와 일자무학의 고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의 이름은 김해경이라는 아주 평범한 이름이었답니다.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게 된 계기는 이상의 동생과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서 알 수가 있죠.
1964년 ‘신동아’에 실린 여동생 김옥희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김해경이라는 본 이름이 이상(李箱)으로 바뀐 것은 오빠가 스물세 살 적 그러니까 1932년의 일입니다. 건축 공사장에서 있었던 일로 오빠가 김해경이고 보면 ‘긴상(金さん)’이래야 되는 것을 인부들이 ‘이상(李さん)’으로 부른 데서 이상이라 자칭(自稱)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깁니다.”
그러니까 일본 인부들이 김해경의 성씨를 잘못 알고 ‘이상’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무튼 서울에서 태어난 이상의 어린 시절은 순탄하지가 않았습니다. 이상은 세 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은 데다가 큰아버지에게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였지요.
27살까지 큰아버지 댁에서 살던 이상은, 물질적으로는 윤택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낸 것 같습니다. 300여 평의 넓은 집에 살았던, 어린 이상은 아이들과 함께 놀기보다는 혼자서 장난감도 없이 놀거나 그림을 그렸다고 하네요.
“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오감도 제2호-
이상의 어린 시절 스토리를 알고 나니, 왠지 오감도의 한 부분이 무척 쓸쓸하고 애처롭게 느껴지네요.
이런 이상은 1917년 신명학교를 거쳐서 1924년 보성고보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상은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화가를 꿈꾸다가, 1926년 경성 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을 합니다. 이상이 경성 고등공업학교(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를 진학한 이유는 경성고등공업학교가 그나마 미술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에 취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은 건축과 기사라는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다가 마침내 소설 연재를 시작했답니다.
이상은 소설의 서문을 통해 창작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나의 지난날의 일은 말갛게 잊어주어야 하겠다. 나조차도 그것을 잊으려 하는 것이니 (중략) 나는 지금 희망한다. 그것은 살겠다는 희망도 죽겠다는 희망도 아무 것도 아니다. 다만 이 무서운 기록을 다 써서 마치기 전에는 나의 그 최후에 내가 차지할 행운은 찾아와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무서운 기록이다.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
이 무렵 이상은 폐결핵이 걸려 각혈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게 됩니다.
“스물세 살이오, 3월이오, 각혈이다. 여섯 달 잘 기른 수염을 하루 면도칼로 다듬어 코밑에 다만 납만큼 남겨가지고 약 한 재 지어 들고 온천으로 갔다. 게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그 뒤로 이상은 황해도 백천 온천으로 요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운명의 연인, 금홍이를 만났답니다. 술집에서 금홍이를 만났던 이상은, 종로 1가에 ‘제비’ 다방을 차려서 금홍을 마담으로 앉히기도 했지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 같지 않나요? 맞습니다. 이상은 자신과 금홍이의 실제 사건을 토대로 소설 ‘날개’를 창작했던 것이랍니다. ‘날개’ 속의 ‘연심’이 바로 ‘금홍’이였던 것이죠.
금홍이와 만난 다음 해, 1934년 이상은 ‘오감도’ 신문연재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감도’는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미친 수작’, ‘정신병자의 잡문’ 등 혹평과 비난을 받은 끝에, 삼십 회 분량이었던 ‘오감도’는 15회로 연재를 마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은 사태를 겪은 이상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라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보아야 아니하느냐. 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중략) 다시는 이런-물론 다시는 무슨 다른 방도가 있을 것이고 우선 그만둔다.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따는 정신병이나 고치겠다.”
오감도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마치 좀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오감도’입니다. 13명의 아이가 공포에 질려서 막다른 골목길로 도망을 치지만, 결국 서로가 서로를 공포스러워하는 상황. 이런 모습을 까마귀가 저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죠. 이상의 실험정신이 가득한 ‘오감도’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쉽지 않은 이 작품이, 1930년대의 사람들에겐 어떻게 다가갔을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네요.
그 뒤로 이상의 삶은 변화무쌍해집니다. 1935년 여름, 금홍이 떠나고 ‘제비’ 다방이 파산하게 되자, 이상은 또 다른 다방을 잇달아 개업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를 하게 되면서 이상의 몸과 마음은 몹시 힘든 상태가 됩니다. 그 즈음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니던 변동림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새롭게 인생을 전환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마저도 녹록치 않았습니다. 어려운 경제적 여건, 건강 악화,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족 등으로 이상이 처한 현실은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이상은 현실을 도피하듯, 혼자서 동경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2월 이상은 거리에서 불령선인(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본이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 사람을 이르던 말)으로 체포를 당하고, 한 달이 넘게 유치장에 감금당합니다.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몇몇 사람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하지만, 이미 그의 건강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였지요. 결국 죽음 직전의 혼란한 상태가 되어서 이상은 부인 변동림과 마지막 해후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런 유언을 남깁니다.
“레몬 향기를 맡고 싶소.”
그렇게 그는 만 26년 7개월의 짧은 삶을 마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상은 자신의 문학만큼이나 난해하고 절망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이상의 삶이, 이상에게는 문학적 창조의 원천이 되었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이상은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시대에는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오늘은‘이카네 집’에서는 이상의 일생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이상의 개인사를 통해 이상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상의 개별 작품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답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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