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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네 집
어린이 동화 / 고학년 창작동화 본문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카네 집' 창작동화를 소개해 드립니다.
초등학교 3~4학년부터 읽으면 좋은 동화로, 단짝인 지호와 영우 사이에 벌어지는 스토리랍니다.
가끔 어떤 부부들은 남들 앞에서만 다정한 척하는 '쇼윈도 부부' 행세를 하지요.
그런 것처럼 지호와 영우는 어떤 사건 때문에 '쇼윈도 단짝 친구' 행세를 한답니다.
'가짜로 친한 친구'인 아이들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동화 여행을 떠나보세요
-참, 이 동화는 '이카네 집'이 직접 창작한 동화로, 표절이나 퍼가기를 금합니다.-
가짜로 친한 친구
1
“지호야, 너 학교에다가 우산 놓고 왔어.”
영우의 말을 듣고, 나는 두 손을 번갈아 보았다. 휑한 내 두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걸 이제 말 해 주면 어떻게 하냐?”
나는 훽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 가면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을 게 분명하다. 덩칫값도 못하고 물건을 놓고 다닌다는 엄마의 말이 벌써부터 귓속에 웅웅 울렸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잘 챙겨.”
영우는 발로 바닥을 툭툭 차면서 말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물론 내가 좀 덜렁거려서 깜박 잊고 뭘 두고 오는 때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다 내 옆에 영우가 있어서였다. 키는 내 어깨밖에 오지 않지만, 꼼꼼하고 침착한 영우. 그런 영우가 곁에서 챙겨주니까, 나는 그만큼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영우가 변했다. 영우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을 한 걸까? 내가 학교에다 물건을 놓고 온 걸 알면서도, 꼭 집 근처까지 다 와서 말을 해준다. 여기 갈림길에서 우리가 헤어지기 직전에 말이다.
“영우야, 우리, 친구 아니니? 그것도 아주 친한 친구.”
나는 쌀쌀맞게 말했다.
“우리 친한 친구 맞지.”
영우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뒤로 묶은 머리가 흔들렸다.
“친한 친구 사이인데, 왜 그러는 거야?”
나는 영우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영우는 내 눈길을 피했다. 왠지 나는 기분이 나빴다. 그러자 내 입에서 말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 너랑 친구하기 싫어!”
말이라는 게 다시 주워서 꿀꺽 삼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덜컹 내뱉고 나서, 아차 싶었다.
그렇지만 내 입에서는 엉겁결에 아무 말이나 툭툭 나온다는 걸 영우가 잘 안다. 그래,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가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손톱 밑을 후벼 파는데, 영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우리 친구하지 말자!”
영우 말을 듣다가 손톱 밑을 콕 찔렀다. 나는 정말 기가 막혔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그랬다. 그래서 돌멩이라도 옆에 있으면 힘껏 걷어차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뭔가가 내 눈에 띄었다. 개똥이었다. 그렇지, 저거야. 영우는 서너 발자국만 더 가면 개똥을 밟게 된다!
‘그래, 너도 한 번 당해 봐라!’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소심한 복수를 결심했다. 그리고 영우한테 개똥에 대해 말 해주는 대신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으악!”
내가 셋을 셈과 동시에 영우가 개똥을 철퍼덕 밟았다. 그리고서는 개똥 밟은 발을 들어 허공에다가 팔랑거렸다.
나는 생각했다. 개똥을 밟은 건 영우가 덤벙거린 탓이지, 내 탓이 아니라고. 나는 영우가 나한테 그런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말을 안 한 것뿐이다.
영우는 한쪽 발꿈치를 든 채로 뒤뚱거렸다. 나는 그런 영우 뒤에서 큰소리를 질렀다.
“그래, 우리 정말 끝이야!”
2
다음 날 학교에서 난처한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이 우리끼리 짝을 정하라고 한 것이다.
아이들은 한꺼번에 우루루 일어나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내 옆으로 다가오는 영우를 보았다. 영우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무턱대로 내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더 이상 친구는 아니지만.”
영우는 내 얼굴을 힐끔 쳐다본 다음 다시 말했다.
“다음에 짝 바뀔 때까지만, 친구인 척 하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영우가 이렇게 막무가내인 줄을 몰랐다.
지나가는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한 마디씩 했다.
“지호랑 영우는 단짝이어서 좋겠다.”
“너희는 짝 고르러 헤매지 않아도 되잖아.”
그러자 영우는 살짝 고개를 돌려서 속삭였다.
“우리가 헤어진 걸 아직 애들이 모르잖아. 애들도 곧 알게 될 거야. 그때까지만 가짜로 친한 친구 하자.”
나는 영우와 짝을 하고 싶은 마음이 눈꼽 만큼도 없었다. 당장이라도 영우한테 싫다고 말한 다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 입과 발이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수업 종이 울렸다.
“얼른 짝 결정하고 자리에 앉아야지!”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직도 짝을 못 구한 아이들은 아무 자리에나 가서 앉았다. 교실이 조용해지자 선생님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이 스스로 짝을 정했으니, 수업 분위기도 더 좋아지길 기대하마.”
나는 뚱한 표정으로 싱글벙글한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참, 수업 시간에 짝하고 떠들다가 걸리면 알지?”
선생님이 아이들을 쭉 둘러보며 말하자 아이들의 얼굴 표정이 싹 굳어졌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 둘을 이번 학년이 끝날 때까지 떨어뜨려 놓을 거다.”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바로 저거다! 나는 무릎을 탁 치며 생각했다. 영우하고 가짜로 친구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헤어지기 위한 방법! 이제부터 나는 영우한테 계속해서 말을 걸기로 했다.
그 뒤로 영우에게 말 할 기회만 노렸다. 일부러 선생님 눈에 띄려고 영우 쪽으로 몸을 확 붙였다.
“이영우, 너 발 사이즈 몇이야?”
“이영우, 좀 전에 선생님이 뭐라고 한 거야?”
하지만 영우는 차가운 얼굴로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딱 보니까 내가 왜 자꾸 말을 거는지 눈치를 챈 거였다. 그러다가 쉬는 시간엔 영우의 태도가 변했다. 아이들이 우리 근처에 있을 때는 나를 보고 웃기까지 했다. 진짜로 친한 친구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 나와 영우는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았다. 수업 시간에는 내가 술래, 쉬는 시간에는 영우가 술래였다. 누군 말을 걸면서 쫓아다니고, 또 누군 그걸 피하면서 도망 다녔다. 우리는 그렇게 일주일도 넘게 보냈다.
3
어느 날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물고기를 들고 집에 갔다. 방과후 수업에서 받은 물고기였다. 어항 대신 봉지에 담긴 물고기를 들고 가는데 찰방찰방 물소리가 들렸다. 그때 저만치 앞서 가는 영우가 보였다.
나는 터벅터벅 걸어가는 영우를 헉헉거리며 쫓아갔다.
“이영우! 나랑 말 좀 해!”
나는 의기양양하게 물고기를 높이 들었다. 영우의 도움 없이도 깜박하지 않고 잘 챙기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할 말이 뭔데?”
영우한테서 찬바람에 쌩 불었다.
영우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허공을 울리자, 갑자기 식은땀이 또로록 떨어졌다. 혹시 영우가 죽을병이라도 걸렸나? 내가 알던 영우는 아무리 언짢아도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던 애였다. 영우가 진짜 수상했다. 변해도 너무 변했으니까.
“이영우! 너 좀 이상해!”
“내가 뭘? 네 우산 안 챙겨준 거 때문에? 그럼 넌 내가 개똥을 밟는 거, 왜 보고만 있었어?”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서 딴청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자전거 한 대가 길 한 가운데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나는 허둥대다가 자전거를 피해 냅다 뛰었다. 그러는 바람에 손에 든 물고기를 놓쳐 버렸다.
큰일이었다. 그냥 두면 물고기 위로 자전거가 지나가게 된다! 어떻게 하지? 나는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영우가 물고기에게 달려들었다.
“끼익.”
영우가 바닥에 떨어진 물고기 봉지를 집어들 때, 자전거가 멈춰 섰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영우는 물고기 봉지를 나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호! 언제까지 덩칫값도 못하고 덤벙거릴 거니?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할 건데?”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영우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영우는 터덜터덜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집에 가서도 영우의 뒷모습이 계속 떠올라,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담긴 것처럼 답답했다.
4
다음 날, 교실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지호야, 영우 전학 간다며?”
범서가 나한테 달려오면서 말했다.
“뭐? 저, 정말이야?”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 영우하고 제일 친한 데 그것도 몰랐어? 영우, 오늘 전학 간대.”
범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주변에서 아이들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영우에게는 다섯 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오빠가 있다고 했다. 영우네 오빠는 태어날 때부터 병원에서 치료도 많이 받았단다. 영우는 자기가 누나라도 된 것처럼, 다섯 살 때부터 오빠를 챙겨주었다고 했다. 영우가 전학을 가는 것도 오빠 때문이란다. 오빠가 치료를 더 편하게 받도록, 영우네 가족들이 병원 근처로 이사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모든 상황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러자 가슴이 따끔따끔해졌다. 지금까지 영우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는 게 부끄럽고 미안해서였다.
잠시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칠판 앞으로 나갔다. 그런 다음 칠판 한 가운데다가 커다랗게 글씨를 썼다.
‘영우야! 나랑 진짜로 친한 친구 할래?’
진정한 친구라면 어떠한 순간에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거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용감하게 나의 우정을 고백했다.
그러자 아이들 몇 명이 나를 따라, 칠판에다가 글자를 써내려갔다.
‘영우야! 몸 건강하게 잘 지내!’
‘영우야, 네가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
‘영우야! 우리를 절대로 잊지 마!’
나중에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왔다. 칠판 앞은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들어졌고, 칠판은 영우에게 전하는 글로 차득 찼다.
마침내 교실문이 열리고 선생님과 영우가 들어왔다. 선생님은 영우가 전학을 간다고 했고, 그 사이에 영우는 칠판을 올려다보았다. 진한 청색 하늘과 같은 칠판에는 수많은 말이 꽃처럼 피어있었다.
영우는 몹시 놀라는 눈치였다.
“얘들아, 고마워.”
영우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그러자 내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잠깐 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나는 영우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영우야…….’
나는 고개를 숙여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닦았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들었는데 영우와 눈이 마주쳤다. 영우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신기했다. 영우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영우의 마음이 저절로 알아졌다. 영우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호야! 우리는 진짜로 친한 친구야!’
나도 영우를 향해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영원히 친한 친구야!’
그랬더니 영우가 나를 보면서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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