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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과 관련된 학생 글짓기 예

별뜨락 2022. 11. 3. 22:13
6.25 전쟁과 관련된, 학생의 글짓기입니다.

 

어느 날, 저는 우연히 윌리엄 웨버 대령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9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윌리엄 웨버 대령에게 이전 대통령, 현재 대통령, 보훈처장 등이 애도를 표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윌리엄 웨버 대령이 누구이길래,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하는 것일까?’

저는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어서, 여러 자료를 찾아가며 윌리엄 웨버 대령에 대해 조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집한 자료가 점점 쌓여갈수록 윌리엄 웨버 대령의 스토리들은 다양한 감정으로 제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625 전쟁에 참전했던 윌리엄 웨버 대령. 윌리엄 웨버 대령은 1951년 원주 전투에서 중공군의 수류탄과 박격포에 공격을 받아 팔과 다리를 잃었던 분이었습니다. 타국의 땅에서 팔과 다리를 한꺼번에 잃었는데도 윌리엄 웨버 대령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가 그 당시의 윌리엄 웨버 대령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잠시 눈을 감고 1951년 원주 전투 당시의 윌리엄 웨버 대령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 고향을 떠나와 모든 게 낯설기만 한 땅에 윌리엄 웨버 대령이 있습니다. 사방에서 포탄이 요란하게 터지고 있고, 그 가운데 쓰러져가는 전우들의 모습이 보이지만, 윌리엄 웨버 대령은 그 가운데에서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 전투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이 땅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자유를 잃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목숨을 잃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자유를 잃는 것은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윌리엄 웨버 대령은 이 땅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있는 힘을 다해 전투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윌리엄 웨버 대령에게 포탄이 날아왔고, 포탄은 순식간에 윌리엄 웨버 대령의 팔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찢어지는 팔의 고통이 온몸으로 번져갔습니다. 동료들이 그를 후송 차량으로 민첩하게 옮기는 동안, 윌리엄 웨버 대령은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후송 차량이 출발하자, 그의 머릿속에 정겨운 고향의 풍경, 사랑하는 가족, 친근한 친구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쳤습니다. 그는 마치 고향, 가족, 친구들이 등장하는 달콤한 꿈을 꾸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탔던 후송 차량으로 또 다시 포탄이 날아 들어왔습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후송 차량 안에서, 윌리엄 웨버는 다리마저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하루 동안 팔과 다리를 모두 잃게 된 윌리엄 웨버. 그 와중에 윌리엄 웨버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만났던 조선인들을 떠올렸습니다. 자유를 잃고, 일본에서 노예처럼 잡혀있던 조선인들. 윌리엄 웨버 대령은 맥아더 장군의 명령을 받고 조선인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켰는데, 그때 자유를 얻은 조선인들의 모습을 윌리엄 웨버 대령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생명을 다시 찾은 것처럼 생기를 얻었던 조선인들을 말입니다.

윌리엄 웨버 대령은 그 당시의 자유를 되찾은 조선인들과, 지금 자유를 잃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사람들이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쟁에서 그에게 일어난 그 끔찍한 일을 묵묵히 견뎌낼 것을 각오하며, 서울 부산 일본을 거쳐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갔습니다. ]

 

1951년 원주 전투에서 팔, 다리를 잃었던 윌리엄 웨버 대령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던 저는, 다시 눈을 떴습니다. 그러자 서서히 제 마음속에 어떤 감동이 일어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팔다리를 모두 잃은 상태에서도 굳건한 정신으로 자신의 가치를 지켰던, 윌리엄 웨버 대령의 삶이 주는 감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윌리엄 웨버 대령의 삶은 저에게 감동이라는 감정 외에 또 다른 감정을 안겨주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또 다른 감정은 바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낙담하고 두려워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훨씬 심각한 신체의 손상을 입은 윌리엄 웨버 대령은 좌절은커녕, 오히려 강인함으로 우뚝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625 전쟁이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헌신하시며 일생을 마감했던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윌리엄 웨버 대령이 우리에게 주었던 용기와 희생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윌리엄 웨버 대령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생각을 전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윌리엄 웨버 대령은, 우리 땅에서 용기를 내고 희생을 했던 건, 자유를 지키고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의무가 있어. 그 의무는 자유가 없거나, 자유를 잃게 생긴 사람들에게 그 자유를 전하고 지키게 하는 거야.”

저는 자신의 신체적 고통까지도 극복하며, ‘자유를 위해 헌신했던 윌리엄 웨버야말로, 대한민국에 인간 존엄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휴머니즘을 실천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의 마음 덕분에 지금 이 땅에 살고있는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윌리엄 웨버 대령에게 한없이 고맙다는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윌리엄 웨버 대령에 대한 감사함은, 그가 잊혀지지 않도록 평생을 노력했던 한국전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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