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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네 집
청렴 인성 교육 본문
요즘은 어디를 가든지 김영란법이 적용되는 만큼 우리 사회의 청렴도가 예전에 비해 높아진 것 같습니다. 교직원, 언론인, 공무원 등은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거나 과태료가 부과되다보니, 조금이라도 오해를 받을 행동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청렴 의식에 대해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만큼, 청렴과 관련된 인성 교육이 필요합니다. 청렴과 관련된 교육은 스토리텔링과 함께 이루어지는 게 재미도 있고 효율적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청렴에 관한 짧은 글 한편을 소개합니다. 이 글 역시 저의 창작품입니다. 저의 열정과 노력을 생각하시어, 퍼가거나 표절하시는 일은 하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청렴 문방구 주인, 양순씨
양순씨의 문방구는 망리동길, 오래된 동네 골목길에 있다. 그녀는 삼 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 문방구 주인이 되었다. 남편을 떠나보낸 뒤 그녀는 문방구와도 이별을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문방구를 정리하려고 마음먹던 날, 그녀의 작은 발은 문방구 바닥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갔고, 아이들을 키워냈던 그곳을 차마 박차고 나올 수가 없어서였다.
문방구 일에 뛰어든 다음, 누구보다도 놀란 건 그녀 자신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문방구 주인이었던 것처럼 가게 일을 능숙하게 해냈던 그녀. 그녀는 문방구 주인이 된지 보름 만에 도매상과 거래하고, 물건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걸 너끈하게 해냈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마도 그녀의 남편이 문방구를 꾸려나가던 걸 어깨 너머로 보아왔기 때문일 거라고.
진열장마다 빼곡한 각종 용지, 오피스 소모품, 펜, 봉투. 문방구 안의 물건들에 에워싸인 양순씨는 이따금 세상과 멀리 떨어져 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할 만 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번져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져줄 때는, 두 눈에서 빛도 났다. 생각만큼 장사가 잘 되지는 않았지만, 자식들 다 키웠으니 부담 없이 소일거리를 한다고 생각하면 기분도 좋았다. 적어도 딸애가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양순씨는 딸애에 대한 걱정으로 웃음을 잃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썩 잘 견뎌냈던 딸. 딸은 얼마 전에 결혼도 했다.
그러던 딸이 며칠 전 찾아왔다. 한동안 그녀의 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억지로 말을 삼켜가며 감정을 감추려고 했지만,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끝내 삼켜버리지는 못 했다.
“수현아, 왜 그래?”
“엄마, 나 어떡하지?”
양순씨 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엄마, 어떻게 해.”
양순씨의 딸이 손톱을 깨물었다. 불안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녀의 딸은 한참 만에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 양순씨는 놀라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는 딸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딸을 안은 그녀의 두 손이 뜨거웠다.
“수현아, 엄마가 어떻게 해서든 비용 마련해 볼 테니까, 걱정 마.”
양순씨는 몇 번이나 이렇게 말했다.
며칠 사이 양순씨의 얼굴에는 주름이 도드라지고 눈빛은 흐려졌다. 그녀는 가게 구석진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마치 한 자락의 연기가 되어 떠올라 안개 속에 휩쓸리는 듯 했다.
‘우리 수현이 생각하면 장사라도 잘 되어야 하는데.’
양순씨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신경을 돋우기 시작한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고 가슴을 툭툭 쳤다.
“수현이 아빠, 이럴 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양순씨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좁은 어깨가 들썩였다.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덮이더니 빗방울을 흩뿌렸다. 골목에 사람들이 빠지면서 가게도 조용해졌다. 양순씨는 고개를 들더니 허공을 응시했다. 어두운 공기가 문방구 안을 가득 채웠다.
진열장 위에서 문자 알림 소리가 울렸다. 별 거 아닌 문자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귀찮은 듯 핸드폰을 흘깃 쳐다봤다.
문구용품, 대량 거래 원합니다.
액정 위에 문구가 눈 위에 스쳤다. 그녀는 눈을 비비 다음, 성큼 앞으로 나아가 핸드폰을 낚아챘다.
만나 뵙고 자세한 내용을 상의 드리고 싶습니다. 조용한 자리에서 만났으면 하는데, 오늘 밤 10시, 어떠신지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문방구로 찾아뵙겠습니다.
핸드폰을 쥔 양순씨의 손이 희미하게 떨려왔다. 바로 이런 걸 기회라고 하는 걸까? 그녀는 고개를 들어 문방구 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골목은 붉은 저녁노을 가루로 뒤덮였다. 노을에 그을린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10시에 온다고?’
양순씨는 10시가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밤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10시가 가까웠다. 양순씨의 마음속에는 기대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자리 잡았다.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힘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마음에 불안이 더욱 커졌다. 양순씨는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문방구 안을 서성거렸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뒤엉겨 버렸다. 대량 거래라고 말 할 정도면, 얼마나 큰 거래일까? 거래가 성사되기에 10시는 적당한 시간일까? 만약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면 큰일인데.
그러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누굴까?’
양순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머릿속에 한 인터넷 카페를 떠올렸다. 그녀의 짐작이 맞는다면, 10시에 만날 그는 그 카페의 회원일 것이다.
양순씨는 가끔 인터넷 카페에 글을 남겼다. 그녀의 딸이 알려준 카페였다. 딸은 지역 커뮤니티에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다보면 문방구를 운영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몰라서, 가입하는 것도 딸애가 도와주었다. 카페에서는 지역소식에서부터 생활정보, 문화소식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아프거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소개하고 후원을 해주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주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가끔 문방구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다.
10시가 되었다.
양순씨는 온몸의 신경을 집중시키고 입구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잠시 후 골목 저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가까워질수록 느려졌다. 마침내 얼굴이 나타났다. 고개를 푹 숙인 얼굴이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가 바로 문자를 준 손님이라는 것을.
“저, 혹시…….”
양순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문방구를 들어오려던 그가 멈칫했다.
“10시에 오시기로 한 분, 맞으시죠?”
무슨 일인지, 그는 양순씨의 말을 듣자마자 급하게 뒤를 돌았다. 그러더니 캄캄한 골목으로 달려 나갔다. 고요한 밤 골목길에 그의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양순씨는 처음엔 놀라서 가만히 있었다. 조금 뒤에는 허탈감이 그녀의 온몸을 감쌌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이게 뭐야!’
그녀는 물병에 들어있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우리 수현이는 어떻게 하라고. 더 커지기 전에 종양을 없애야 하고, 그러려면 얼른 수술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양순씨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가슴이 쓰라렸다.
그녀는 잠시 어두운 골목을 바라보았다. 골목을 비추던 불빛들이 하나씩 꺼져갔다. 양순씨는 잔뜩 실망한 채로, 문방구 문을 걸어 잠그려고 했다.
그때 핸드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약속을 어겨서 죄송합니다.
그가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실례가 안 된다면, 문자로 이야기를 건네도 될까요?
양순씨는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그의 문자 메시지가 이어졌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Q 기업, 관리팀에 근무하는 김준영입니다.
문자 메시지를 읽어나가면서 양순씨는 조금 전 느꼈던 실망감을 털어냈다.
이번엔 양순씨가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문방구 주인 양양순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로 둘은 문자 메시지를 빠르게 주고받았다.
제가 담당하는 일 중 하나가 회사에 필요한 문구류를 구매하는 일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회사에서 필요한 문구류의 양과 종류가 꽤 많습니다. 그걸 그 문방구에서 구입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네, 감사해요. 얼마를 주문하시든 물건을 잘 갖추어 놓을 테니 염려 마세요.
어느새 양순씨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라고요? 웬만하면 들어 드려야죠.
부탁. 그녀는 ‘부탁’이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것저것 따져보아도 그녀에게 큰 이익을 주면 주었지, 손해될 게 없는 거래였다. 부탁이라고 해봤자, 서비스로 물건을 더 챙겨달라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메시지를 받는 순간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수증을 좀 부풀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녀는 영수증을 부풀려달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수증을 부풀려달라는 게 뭐지요?
그가 다음 메시지를 보내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말 그대로입니다. 예를 들어 실제 구매하는 금액이 삼백만 원일 경우, 영수증에는 삼백오십 만 원으로 기재해주시는 겁니다. 회사에서 결제금액이 입금되면, 부풀렸던 50만 원을 저에게 전달해주시면 됩니다.
양순씨는 문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뭐야, 도둑질을 하겠다는 거잖아!”
양순씨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데, 그의 메시지가 떴다.
거래가 성사만 된다면 다른 거래처도 소개해 드릴 수 있습니다. 주변에 저와 비슷한 업무를 보고 있는 지인들이 많으니까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실 겁니다. 결정하시는 대로 문자 주십시오.
양순씨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골목에는 인기척이 없고, 문방구 입구는 닫혔다. 문방구 안에는 오직 그녀뿐이었다. 그녀는 문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마음속에서 갈등이 시작되자, 그녀는 두려웠다. 마음속 깊숙한 방에 숨겨져 있던 탐욕과 타협하려는 자신이 두려웠다.
“수현이 수술비 벌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눈 딱 감아 볼까?”
그녀의 소리가 문방구 바닥에 낮게 깔렸다.
고민을 거듭하면서 그녀는 입을 깨물었다. 그러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다음에는 머리카락을 비틀어보기도 했다.
그때 문득 부패를 저질렀던 사람들에게 맹렬한 비난한 퍼부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청렴함을 내던졌던 이들에 대해, 그녀는 얼마나 많이 실망했던가? 부정한 대가를 받아서 취업을 시켜주고, 토지형질변경 허가를 해주고, 보조금을 타게 해주고, 엉터리 병영판정검사를 해줬던 사람들.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양순씨는 지금껏 그녀가 지탄해오던 부류의 사람이 되고 싶지가 않았다. 살다보면 갑작스럽게 삶이 바뀔 수도 있지만, 지켜야 할 가치까지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수현이 병원비는…….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그녀는 숨을 크게 한 번 내쉬었다. 몇 번을 더 크게 쉬었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양순씨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는 문자를 보내겠다고 마음먹고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우선 저희 문방구에 대한 관심을 감사드립니다. 김준영씨의 제안에 대해 생각을 해봤지만.
그러나 문자를 다 입력하기도 전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가 보낸 것이었다.
저를 부패한 사람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6살 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많이 아픕니다.
메시지 아래로 사진 몇 장도 있었다.
‘아, 이 아이는…….’
양순씨는 사진 속의 아이를 금방 알아보았다. 지역 카페 게시판에서 본 아이였다. 아이는 몇 개월 전 급성 척수염에 걸린 이후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무균실에서 면역글로불린을 맞아가며 힘겹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이에게, 양순씨는 위로와 격려의 글을 몇 번 올린 적도 있었다. 글을 올리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그와 같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문방구 주인이 되고 싶다고.
병원 침대 위에 누워있는 아이의 사진을 보는데, 그의 문자 메시지가 이어졌다. 이번 메시지는 꽤 길었는데, 거기에서 양순씨는 그의 마음을 꿰뚫은 고통과 두려움을 읽었다.
제 심장은 상처투성가 되었습니다. 세 달 전 멀쩡하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병원에 실려 가서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벼랑 끝에서 흔들리는 심정을 과연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아이가 고비를 넘겨서 깨어나긴 했지만, 그걸로 고통이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멀쩡하던 아이는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그마한 아이가 종일 누워서 온갖 약물을 투여 받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가슴이 타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더 못 견딜 것 같은 건, 치료비를 감당하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아이의 치료비도 못 댈 것 같아, 마음이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건, 경험해보지 않은 부모라면 모를 겁니다.
어제는 아이가 누워있는 멸균실 앞에 주저앉아 통곡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목 놓아 울었습니다. 한참 만에 울음을 그치고 났을 때,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회사 문구류를 부정한 방법으로 구매를 해서, 돈을 빼돌리자!’지인에게 들었던 아무개의 이야기가 떠올라서였습니다. 회사에서 영수증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꽤 많은 돈을 거머쥐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마침 지역 카페에서 저희 아이에게 고마운 말씀을 많이 남겨주시던 문방구 사장님이 생각났습니다.
저희 아이를 봐서라도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딱 삼 개월이면 됩니다. 삼 개월 정도 치료를 더 받으면 퇴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만 도와주십시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양순씨의 손이 떨렸다. 아이의 운명이 그녀에게 달려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녀는 불안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나 하나 깨끗하지 않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게다가 이게 모두 아이들을 위해서 그러는 거잖아.’
결국 양순씨는 영수증을 부풀리는 일을 모의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모든 게 수현이와 아이를 위해서라고 몇 번이나 되뇌면서 말이다. 그녀는 문방구의 출입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그런 다음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고 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거래가 성사가 된다면, 이익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며 양순씨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부당한 이득에 매혹을 당하는 순간이었다. 부정하고 부패한 영혼이 그녀에게 내려앉았고,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정결하게 살아왔는지를 망각했다.
이제 양순씨가 무언가를 말해야 할 차례이다. 그녀는 은밀하게 속삭일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문방구 안의 모습이 그녀의 눈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그 순간 남편이 떠올랐다. ‘수현 엄마,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정직하잖아. 우리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려면, 바르게 살아야겠더라고.’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양순씨는 그제야 남편이 왜 그런 말을 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부정한 거래의 유혹이 남편에겐들 없었겠는가? 그러나 남편은 문방구를 정직하게 일구어 놓았다. 그건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잘 알았다.
‘그래, 여기는 남편이 남겨준 청렴 문방구야!’
갑자기 자욱한 안개가 걷히는 듯 정신이 맑아졌다. 양순씨는 마음을 다시 고치고, 정직한 마음을 간직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러자 그녀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그녀는 또렷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저는 제안을 거절할게요. 사실 제 딸애도 아프답니다. 딸의 몸에 종양이 생겼거든요. 솔직히 수술비를 마련할 생각에, 그쪽에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딸애한테 떳떳한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방구 주인으로서 정직하게 살아가야 하겠죠. 저는 확신해요. 그렇게 바른 마음으로 열심히 살다보면 딸애를 위하는 길이 나타날 거라고요.”
양순씨는 이런 유혹 따위에 다시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전화를 끊었다.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그 사이 그녀의 딸은 수술을 마쳤다. 다행이었다. 수술 결과도 꽤 좋았고, 회복도 예상보다 빨랐다. 그토록 걱정했던 수술비는 사위가 회사 대출을 받아서 마련했다. 힘겨웠던 일들은 조금씩 변화하면서, 그들의 삶은 앞을 향해 나아갔다.
저녁때가 다 되었을 때 한 남자가 문방구 앞에서 기웃거렸다. 양순씨는 그림자가 스치는 느낌이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를 만나러 온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김준영이라고 합니다.”
양순씨와 눈이 마주친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 어떻게 여기까지…….”
양순씨는 깜짝 놀랐다.
“다름이 아니라,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요.”
그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몇 달 동안 저희 아이에게 후원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딸 수술비 때문에 생긴 대출금을 매달 조금이라도 갚아주려던 양순씨. 하지만 딸 내외는 그걸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씩 해내는 걸 응원해달라고 했다. 결국 양순씨는 딸 내외의 대출금을 매달 갚는 대신, 아픈 아이들을 후원하기로 했고, 그 중에 한 명이 그의 딸이었다.
“여러 분들께서 후원을 해주셨어요. 모자란 부분은 대출을 좀 받았고요. 참, 척추염 치료는 모두 끝났어요. 지금은 퇴원해서 집에서 지내는데,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재활 훈련을 하고 있어요. 걷는 것도 점점 좋아지고 있고요.”
그의 얼굴에 올바르고 정직한 영혼이 비쳤다.
양순씨의 마음은 일찍이 이와 같은 기쁨에 이른 적이 없었다. 청렴한 문방구 주인, 양순씨. 그녀의 미소가 오래된 동네 골목길을 환하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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