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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진신수공

별뜨락 2020. 3. 9. 22:57

다음 글은 삼국유사에 실린 '진신수공(眞身受供)'을 우리말로 번역한 글입니다. 

기존의 번역보다는 이해가 되기 쉽도록, 현대적인 감각으로 고쳐 보았어요~




   진신수공(眞身受供)


장수 원년 임진에 효소왕이 즉위하여 처음으로 망덕사를 창건하였다. 그 뒤로 망덕사에서 당나라 제실의 복을 빌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경덕왕 10년이 되었을 때, 망덕사의 탑이 떨면서 움직이더니, 그 해에 안록산, 사사명의 난리가 일어났다. 

이것을 보고 신라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당나라 제실을 위하여 이 절을 세웠으니, 그 감응이 마땅하다."


8년 정유에 낙성회를 베풀며 왕이 친히 거동하여 판공할 때였다. 얼굴이 누추하게 생긴 한 비구가 뜰에 구부리고 서서 왕에게 청하는 것이었다.

"빈도 또한 재드리기를 청하옵니다."


왕은 비구가 말석에 앉는 걸 허락했다. 재가 장차 끝날 무렵에 왕이 농담으로 비구에게 물었다.

"석장은 어느 곳에 머무르는가."

그러자 비구가 대답했다.

"비파암이랍니다."

왕이 다시 말했다.

"가는 길에 다른 사람들에게 '국왕이 친히 베푼 재를 받았다'고는 말하지 말아다오."


비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폐하께서도 남들에게 '진신서가'와 함께 공양하였다.'고 말하지 마소서."


말을 끝낸 비구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남쪽으로 향하여 사라져 버렸다. 이를 본 왕은 놀라면서도 부끄러웠다.

왕은 말을 달려 재빨리 동강에 올라 멀리 그쪽을 향해 예를 한 다음, 시자로 하여금 진선서가를 찾아가게 하였다. 

시자가 삼성곡에 이르렀을 때, 어떤 사람이 알려주었다.

"(비구로 변했던 진선서가는) 대적천 근원지 바위 위에 석장과 바리때를 어디인지 숨어 버렸답니다."


시자가 돌아와 아뢰었더니, 왕은 비파암 아래에 석가사를 창건하고, 진신서가가 사라진 곳에 불무사를 세웠다. 그리고 그곳에다가 진신서가가 버리고 간 석장과 바리때를 나누어 간직하였다. 현재 두 절은 지금까지 남아 있으나, 지팡이와 바리때는 잃어버렸다. 


<지론> 제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옛날 계빈삼장이 아란약법을을 행하기 위해 일왕사에 갔을 때, 절에서 큰 모임을 베풀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문지기가 계빈삼장의 옷이 남루한 것을 보고, 문을 막으며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 여러 차례였다. 옷이 해진 까닭에 매번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계빈삼장은 곧 방법을 생각해내어 좋은 옷을 빌려입고 갔는데, 이번에는 문지기가 그를 보고 들어가기를 허락하였다. 

이미 자리에 앉은 계빈삼장은 여러 가지 좋은 음식을 집어다가 먼저 옷에게 주었다. 이를 보고 뭇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그리 하시는지요?"

그러자 계빈삼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최근 여기를 자주 찾았는데, 매번 들어오지 못하다가, 좋은 옷을 입고 나타났더니 이 자리에 앉아 여러 가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소. 그러니 이 음식을 먼저 옷에게 주어야 마땅치 않겠습니까."


이 일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을까 싶다.


찬하되,


향 태우고 부처 모셔,

새 그림을 그렸으니,

공양하는 스님들이,

옛 벗을 부르도다.

이로부터 비파암,

그 위에 달빛이,

때때로 구름에 덮혀,

연못에 더디 이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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