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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1호점

별뜨락 2020. 4. 19. 23:39

'화분 1호점'은 중학생 아이가 쓴 글이에요.

김환태 수필가의 작품을 읽고,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써내려간 글이랍니다.



화분 1호점


입추가 지났는데, 가을이 늦잠을 자나 보다. 가을의 선선한 공기가 가득 차 있야 할 때인데도, 한낮에는 아직도 덥다. 햇볕이 뜨거워서 조금만 걸으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춘추복 교복 대신 다시 하복으로 바꿔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던 날, 김환태 선생님의 화분을 읽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봄이 오기를 소망하는 김환태 선생님의 마음이, 더운 여름이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가을이 오기를 소망하는 나의 마음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김환태 선생님이 부엌 한 귀에다 몰아두었다가 윗목으로 옮겨놓은, 난초 화분에서 우리집 화분이 떠올라서였다.

우리집에는 화분 1호점이 있다. 내가 태어날 무렵, 부모님께서는 우리집에 처음으로 화분을 들여놓으셨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우리집에는 화분이 없었다고 한다. 화분 키우는 데에 소질이 없었던 부모님께서는 식물을 잘못 키우다가 죽이게 될까봐 화분을 키우지를 않으셨다.

그런데 내가 태어날 무렵, 어느 친척분께서 작은 행운목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10cm도 안 되는 작은 나무토막에 초록 잎이 몇 개 달려 있던 행운목. 부모님은 그걸 유리컵에 담아 기르셨고, 행운목은 유리컵 속에서 뿌리가 자랐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집의 행운목은 유리컵 속에서 조금씩 자랐다. 뿌리가 유리컵 밖으로 솟아오를 무렵, 부모님은 그걸 화분에다가 옮겨 심었고, 그렇게 해서 우리집 화분 1호점이 탄생했다.

내가 점점 자라면서, 우리집에는 화분 2호점, 3호점, 4호점, 5호점까지 화분이 늘어났다. 그건 모두 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받아왔던 화분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받았던 화분들이 우리집에서는 무척 잘 자랐다. 갸냘프던 잎들도 일단 우리집 한 구석에 자리잡고 나면, 두껍고 진한 잎으로 변했다. 나는 그토록 잘 자라는 화분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튼튼하게 잘 자라는 화분만 나눠 주나봐.’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똑같이 받아간 화분이, 친구들 집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거나 죽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어떻게 우리집 화분들이 잘 자라나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께서 이웃들과 하시는 말씀을 우연히 엿듣고, 우리집에서 유난히 화분이 잘 자라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김환태 선생님의 화분에서 가난한 선생님의 화분은 단순히 식물 한 줌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에게 난초 잎은 어렸을 적 어머니와 할머니를 따라 다니던 텃밭이었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텃밭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할머니와 어머니와의 추억이, 바로 화분이었다.

우리 부모님에게 화분 1호점은 바로 나였다. 우리 부모님은 온 정성을 다하여 나를 보살피시고, 행운목을 키우셨다. 딱 알맞은 정도로 물을 주시고, 행운목이 있는 곳에 맑은 공기와 햇볕을 들어오게 하셨다. 잎 끝이 조금이라도 누렇게 되면, 고운 흙 위에 영양제까지 놓아주셨다. 나는 행운목과 함께 깨끗한 물로 목을 적시고, 맑은 공기를 두르며, 눈부신 햇살을 가득 모았다.

이제 우리집 화분 1호점인 행운목은 벌써 나만큼 컸다. 우리 어머니의 키보다도 높아질 날이 멀지 않았고, 어쩌면 우리 아버지의 키보다 더 높아질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훌쩍 자란 화분 1호점을 볼 때마다, 부모님의 정성과 사랑에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화분 1호점뿐만이 아니라, 내가 집으로 가져온 모든 화분에 마음을 졸이시며 키우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김환태 선생님의 화분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우리집 화분을 보면서, 이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김환태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선생님의 마음이 사뿐히 날아올라 나에게 전해진다. ‘화분뿐만이 아니다. 선생님의 글에는 따뜻한 정과 아름다운 마음이 실려 있다. ‘가을의 감상’, ‘정체 모를 그 여인’, ‘싸움’, ‘대련 성포등을 읽으면, 이상하게 마음속에서 물결이 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무조건 서글픈 것만도 아니다. 김환태 선생님의 글에는 재미와 유모가 살아 있기까지 하다. 그래서 김환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웃고 울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선생님의 글을 한 번 읽으면, 다른 글을 또 찾아 읽을 수밖에 없다.

맘물굿-5월의 세레나데를 읽을 때는, 재미있게 읽어나가다가 맘물굿이 무엇인지 몰라 한참동안 끙끙거렸다. 사전과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맘물굿의 단어 뜻을 몰라 속상하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맘물굿-5월의 세레나데를 재미있게 읽었다. 언젠가는 맘물굿이 무엇인지 알아내겠다는 다짐도 하면서 말이다.

 

이젠 가을이 늦잠에서 깨어나, 선선한 바람을 잔잔하게 불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우리 부모님과 함께 가을의 나날을 행복하게 거닐 것이다. 그때 나는 부모님에게 화분’, ‘가을의 감상’, ‘맘물굿-5월의 세레나데등 김환태 선생님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러면 우리 부모님은, 우리집 화분 1호점이 훌쩍 자라난 것처럼, 어느새 몸과 마음이 큰 나를 보면서, 기쁜 미소를 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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